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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친박계 원로 '7인회' 김용환 별세…최순실 때문에 朴과 사이 멀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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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


친박계 원로 모임인 ‘7인회’의 좌장격이었던 김용환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7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5세. 충남 보령 출신인 김 고문은 공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다. 박정희 정권때 34세의 나이로 재무부 이재국장에 발탁됐고 이후 상공부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1974년부터 4년간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 고문을 젊고 유능한 관료로 크게 신뢰했다. 김 고문은 13대 총선(1988년)때 고향인 보령에서 JP(김종필 전 총리)의 신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첫 금뱃지를 달았고 이후 당적은 계속 달라졌지만 16대까지 내리 4선을 했다.

박근혜 탄핵되자 "내말 안 들어 그렇잖아" #박정희 대통령 시절 4년간 재무장관 #1997년 대선 당시 DJP 연합 주역

김 고문은 JP가 1995년 창당한 자민련에서 2인자 위치였다. 김 고문은 지략이 풍부해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지녔고, 자존심이 굉장히 강해 ‘보스’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김 고문은 1997년 대선때 JP의 위임을 받아 DJ(김대중 전 대통령)측의 한광옥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현 청와대 비서실장)와 후보단일화 협상을 벌여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DJP연합을 성사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1999년 JP가 내각제 개헌을 포기하자 김 고문은 JP와 결별을 선언하고 탈당해 한국신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한국신당이 독자생존에 실패하자 김 고문은 2001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김 고문을 당 국가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며 깍듯이 예우했다. 2002년 대선때 한나라당에서 JP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김 고문이 이 총재에게 “그럴러면 나를 밟고 가시라”며 강력히 반발해 연대를 무산시켰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노무현 정부때 김 고문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막후 지원 그룹에 합류해 박 대표를 도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 고문을 비롯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현경대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갑 전 의원 등 7명과 비공개로 정기적인 모임(일명 ‘7인회’)을 가졌다. 김 고문은 이 7명 모임을 이끄는 리더로서 박 전 대통령에게 여러가지 정치적 조언을 많이 했다.

2001년 8월 22일 청와대 만찬에서 김용환 의원(가운데)이 진념 경제부총리(오른쪽), 김재철 무역협회장(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8월 22일 청와대 만찬에서 김용환 의원(가운데)이 진념 경제부총리(오른쪽), 김재철 무역협회장(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다 2012년 대선때 김 고문이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7인회’라는 단어를 거론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은 김 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세상에서 고문님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아시냐. 박근혜의 최시중이라고 합니다”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김 고문이 캠프의 ‘막후 실세’로 비쳐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경고였다. 당시 충격을 받은 김 고문은 스트레스로 안면신경마비가 오기도 했다. 김 고문과 박 전 대통령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건 최순실씨 문제 때문이었다. 김 고문은 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를 전달하면서 “이제 최태민의 그림자를 지우시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이 곧바로 굳어지면서 “그런 말씀 하시려고 지금까지 저를 지지해 주신거냐”라며 말을 잘랐다는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만난 건 고사하고 전화통화 한번 한 일이 없다고 한다.

2013년 초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던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 후임 회장에 김 고문을 추천하자 박 전 대통령은 “좀 더 젊은 분이 하셨으면 좋겠다”며 거절의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김정렴 전 실장은 김 고문이 박 전 대통령의 눈밖에 났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얼마뒤 박 전 대통령이 낙점한 후임 회장은 7인회의 또다른 멤버였던 김기춘 전 실장이었다.

김 고문은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이 언젠가는 자신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감감무소식이 계속되면서 크게 상심했다는게 주변의 전언이다. 김 고문은 2015년 이후 건강이 크게 나빠져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 한 측근이 병상에 누워있던 김 전 의원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전하자 김 전 의원은 “거 봐, 내 말 안 들어서 그렇게 됐잖아”라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김 고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10일 발인이다. 이한구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 고문과 동서 관계고,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 고문의 보좌관 출신이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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