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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살 길, 뭉쳐서 찾겠다"는 임선옥 패션 디자이너

중앙일보

입력

'웨어 그레이'를 이끄는 임선옥 디자이너.

'웨어 그레이'를 이끄는 임선옥 디자이너.

지난해 5월, 패션 디자이너 5명이 모여 '공부'를 시작했다. 디자인을 배우는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해법을 찾자는 포럼이었다. 데뷔 20년차 임선옥 디자이너(PARTsPARTs·55)가 주축이 됐고, 10년 안팎 경력의 박소현(POST DECEMBER ), 감선주(TheKam), 박미선(GEAR3 ), 이재림(12 ILI) 디자이너가 이를 따랐다. 그런데 자꾸 만나 이야기하다보니 실천이 필요했다. 혼자서 어려운 일을 함께 해보자는 것. 그래서 공동으로 쇼룸을 만들고 패션쇼도 해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이것이 다섯을 대표하는 이름, '웨어 그레이(wear grey)'가 생긴 사연이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 3월 29일 서울 통의동 아름지기 재단에서 '웨어 그레이'라는 이름으로 쇼와 쇼룸을 선보였다. 지난달 27일 포럼을 이끄는 임씨를 만나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후배 박소현·감선주·박미선·이재림 디자이너와 #직접 운영하는 공동 쇼룸 '웨어 그레이' 열어

-어떻게 뭉치게 됐나.

"개인적으로 나름 오랜 구상했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이너가 오롯이 하나의 콘텐트로 다뤄지는 일이 거의 없다. 아티스트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자면 일대기부터 작품 성향, 철학까지 다 다뤄지는데, 디자이너가 옷을 보여줄 땐 드러나는 콘텐트가 거의 없다. 나도 컬렉션을 준비하면 아티스트 이상의 집중도를 발휘하지만 쇼가 끝나고 나오는 이야기들은 뻔했다. 실루엣이 어쨌다, 쇼에 누가 왔다, 뭐 이런 거다. 한 줌의 메시지도 되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자기 목소리를 스스로 내지 못했다는 자성이 생겼고, 그렇다면 옷을 탐구하는 후배들을 찾아 포럼을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왜 굳이 후배들을 멤버로 생각했나.

"요즘은 디자인과 졸업생이 바로 자기 브랜드를 낸다. 일생에 걸쳐 자신을 완성하는 일인데 브랜드가 뭔지도 모를 때 이름부터 짓는다. 실제 트라노이(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트레이드쇼)이런 데 가서 옷이 훌륭하다 싶으면 최소 20년은 된 브랜드들이더라. 한국에 왜 글로벌 브랜드가 없냐고 하는데 아직 그만한 시간의 축적이 안 돼서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그 기간을 버틸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신진 디자이너들을 봐라. 데뷔 때 반짝 스포트라이트 받고 기고만장 하다가 다시 내리막을 걷기 십상이다. 나도 그랬다. 중앙일보에도 여러 번 크게 나왔다. 그리고 나서 쫄딱 망했다. 나중에야 문제가 뭔지 알겠더라. 후배들이 같은 실패를 반복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문제가 뭐 였나.

"옷을 알려주고 팔아주는 자체 시스템이 필요한데 전혀 없었던 거다. 처음에야 컬렉션 너무 좋다는 기사가 줄줄 실렸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유럽처럼 세계에서 바이어들이 오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호(삼성물산 여성복 브랜드)에 가면 70만~80만원이면 살 만한 재킷이 우리 브랜드에선 100만이나 한다고. 거기다 대고 내 옷은 희소성이 뛰어나다고 내세울 수도 없었다. 이건 그냥 제작부터 유통·판매까지 전체 공정이 받쳐주지 않았던 거고 당연히 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디자인만 좋으면 다 사는 줄 알았던 시절의 단견이었다."

왼쪽부터 박소현, 임선옥, 감선주, 이재림, 박미선 디자이너. 김경록 기자

왼쪽부터 박소현, 임선옥, 감선주, 이재림, 박미선 디자이너. 김경록 기자

그는 오랜 고민 끝에 2011년 '파츠파츠(PartspARTs)'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새롭게 바꿨다. 네오프렌(잠수복에 쓰이는 폴리우레탄 원단)이란 단일소재를 사용하고 패턴 규격을 통일하며 봉제 대신 열 접착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원단을 아끼고 재고가 없는 패션, 이른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도전했다. 원단과 디자인이 바뀌면 재고가 생기지만 이를 규격화하니 부담이 사라졌다. '지속가능한 패션'이었다. 국내 시장에서도 서서히 반응이 나타났고 해외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 채널에서는 최종 결정권자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대안은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뭉쳐서 함께 스스로의 시스템 만들고 공유하면 되는 거였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대안 모색

-포럼 멤버들이 어떻게 정해졌나.

"부암동 쇼룸이 박소현 디자이너의 쇼룸과 몇 걸음 지척이다. 가끔씩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내 스타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람이 재미 없고 심각하더라. 늘 옷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화를 하면 결국 '이 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먹고 살까' 라는 걱정을 종종 했다. 그나마 트렌디한 옷을 만들어야 버티는 현실에서 옷을 탐구하며 이 길을 길게 가자고 작정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 뜻을 익히 아는 소현씨에게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달라고 했다."

임선옥 디자이너의 PARTsPARTs

임선옥 디자이너의PARTsPARTs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박씨가 말을 거들었다. 지난해 5월 차 한 잔 하자고 부른 임씨가 불쑥 포럼 이야기를 꺼냈단다. 언뜻 떠오른 후보는 많았지만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 그간의 결과물이 있어야한다는 점을 고려했고, 몇 명이 추려졌다. 박미선 디자이너는 가방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세우는 친구였고, 감선주 디자이너는 저와 색깔을 다르지만 사업을 구상하는 능력이 남다르다는 점을 평소 눈여겨 봐 왔던 터였다. 이재민 디자이너는 종종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모두 분야는 달랐지만 패션 시스템이 어떻게 선순환 돼야 하는가에 얘기 거리가 많았던 사람들이었다. 포럼이 꾸려지자 임씨는 포럼을 통해 후배들과 경험을 나누고 바이어들의 인맥을 소개했다. "어느날 대뜸 선생님이 그러대요. '이제 뭐 해줄까'라고. 덕분에 우리도 서로 나누는 게 많아졌어요. 공유와 확장성, 이게 모임의 키워드가 됐죠."

왼쪽부터 임선옥, 박미선, 감선주, 이재림, 박소현 디자이너.

왼쪽부터 임선옥, 박미선, 감선주, 이재림, 박소현 디자이너.

-실제 모임은 어땠나.

"첫번째 발제가 '한국 패션 시스템 속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로 어떻게 살아 남는가'였다. 유럽이 본보기로 나오면서 전문적인 브랜드 관리자가 있어야 한다는데 공감했는데, 일단 우리가 먼저 현실적인 방법으로 시장을 바꿔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해외 바이어들이 오는 서울패션위크에 맞춰 하나의 브랜드로 뭉치는 실험을 해보자는 게 결론이었다. 규모는 작아도 국내외 시장을 모두 생각해 온 브랜드라 가능했다."

-웨어 그레이는 무슨 뜻인가.

"포럼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다. 섞인 색, 즉 혼색인 그레이는 다양한 문화의 교류, 집단 지성의 공유를 의미한다. 또 흑백이라는 극단성을 벗어나 새로움과 창의적인 주체로서의 패션디자이너를 의도한다는 뜻이다."

임선옥 디자이너의 'PARTsPARTs'

임선옥 디자이너의 'PARTsPARTs'

-뭉친만큼 목표가 있어야 할텐데.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다. 한번이 아니라 다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패션계의 건전한 충격이 돼야 한다. 이미 내 주변에서는 관심이 많다. 진태옥 선생님은 우리가 뭘 하는지 궁금해 하시고, 어떤 분은 자기 쇼룸에 와서 뭔가를 같이 하자고도 제안하기도 했다. 이번 일이 패션계에서 어떻게 전달되고 확장될지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웨어 그레이'라는 이름이 정직하고도 의외성 있는 컨셉트를 갖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감선주 디자이너의 'TheKam'

감선주 디자이너의 'TheKam'

"후배들 있으니 먼저 나서야 하는 책임감 느껴"

-후배들에게 멘토를 자처하지만 개인적으로 얻는 게 뭘까.

"모임을 이끌어가려면 나부터 힘을 내야 한다. 쇼를 외부에서 하는 게 이번이 세번째인데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다. 아는 기자들한테 일일이 다 전화를 해서 취지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나는 무슨 프로젝트가 있으면 그걸 따라가는 수동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안 나서면 누가 나설까 싶은 책임감이 든다. 당장 후배들끼리만 쇼를 하는 거보다 내 이름이 들어가니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나. 우리끼리 앉아서 말로만 '패션은 왜 이래' 하는 건 그만해야 한다. 후배들은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동력인 셈이다."    

이재림 디자이너의 '12 ILI'

이재림 디자이너의 '12 ILI'

-이제 그 다음 행동은 무엇인가.

"확실한 건 없지만 일단 질러놓으면 하게 될 거 같다(웃음).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기록해 놨다. 그걸로 대담집을 내놓을 생각이다. 또 잡지도 창간해 보고 싶다."

임씨의 입에서는 '시스템'이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렸다.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온 첫 걸음도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털어놨다. 96년 데뷔 당시 정기 컬렉션을 하는 SFAA(서울패션디자이너연합회·Seoul Fashion Artists Association)라는 디자이너 단체가 있었기에 신진 디자이너가 패션쇼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다는 것. 최근에는 디자이너 지원 프로그램까지 생겨났지만 한번에 띄우려는 생각보다 버틸 수 있게 하는 지속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세대의 획을 긋는 브랜드가 생겨나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체제와 시스템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힘주어 했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yungrok@joongang.co.kr, 웨어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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