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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프리즌'을 풀어 드립니다! : 나현 감독에게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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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주차인 지난 주말까지 관객 수는 200만 명.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은 가족영화 ‘미녀와 야수’(3월 16일 개봉, 빌 콘돈 감독)에 내줬지만, 평일 극장가에선 개봉 이래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한석규·김래원 주연 교도소 범죄 액션영화 ‘프리즌’(3월 23일 개봉)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오히려 흥행 무기로 내세우며,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SNS에선 ‘스토리가 뻔하다’(xlph***) ‘스토리는 기발했으나 개연성이 부족’(jjan****) ‘연기 덕분에 무섭게 소름 돋았다’(moooo***)는 등 평가가 엇갈린다. ‘프리즌’은 ‘화려한 휴가’(2007, 김지훈 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임순례 감독) 등의 각본가 출신 나현 감독의 연출 데뷔작. 영화를 둘러싼 궁금증을 나 감독이 속 시원히 답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리즌 / 사진=영화사 제공

프리즌 / 사진=영화사 제공

-왜 다시, 교도소에서 잠입 수사하는 영화여야 했나. 

애초 나 감독은 ‘교도소’라는 갇힌 공간에서 인간의 본성과 권력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선 매해 신작이 나올 정도로 자주 봐 온 장르인 만큼, 억울하게 수감된 주인공, 강압적인 간수, 탈옥 등 교도소를 다룬 영화의 전형성을 깨부수고 싶었다”고 했다. ‘프리즌’은 탈옥 따윈 의미 없는 영화다. 죄수들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며 완전 범죄를 저지른다. 다분히 상상력을 발휘한 지점이다. 죄수들의 왕 정익호(한석규)는 그렇게 축적한 부(富)로 공권력을 매수해 교도소를 자신만의 제국으로 지켜 낸다. 출소조차 원치 않는 익호는 분명 이 장르에서 유례없는 캐릭터다. ‘프리즌’의 성취다.

그런데 이 영화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뺑소니 혐의로 입소한 전직 경찰 송유건(김래원)이다. 그는 익호의 오른팔로 급부상하지만, 호시탐탐 익호 패거리의 실체를 캐낸다. 뭔가 익숙하다고? 맞다. 그는 지금 잠입 수사 중이다. 유건의 정체는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확실히 드러나지만, 이 장르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극 초반부부터 눈치채기 어렵지 않다. 사실 ‘프리즌’이 익숙한 스토리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건 주로 유건을 둘러싼 대목 때문이다.

“‘블랙 레인’(1989, 리들리 스콧 감독) ‘무간도’(2002, 맥조휘·유위강 감독) ‘도니 브래스코’(1997, 마이크 뉴웰 감독) 같은 하드보일드한 잠입 수사 영화를 좋아한다”는 나 감독은 “‘제왕’ 익호가 전복의 재미를 준다면, 유건은 기존 장르의 관습에 충실한 ‘침입자’다. 2년가량 시나리오를 고치며 이 둘의 균형 맞추기에 주력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교도소의 제왕 이야기를 쓰려던 게 아니었다”라고 했다. 누구도 섣불리 덤비지 못했던 거대한 악을 박살 내기 위해 몸을 던지는 유건을 통해 “관객에게 통쾌한 대리 만족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익호에게 감정 이입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자기 세상을 구축하고 끝까지 지켜 내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이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나는 익호가 ‘불길 위에서 외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발 자전거는 계속 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연배가 높은 관객일수록 그런 익호에게 많이 공감하더라.” 나 감독의 말이다.

'프리즌' 나현 감독 사진=라희찬(studio 706)

'프리즌' 나현 감독 사진=라희찬(studio 706)

-익호의 과거는 왜 속 시원히 드러나지 않나. 

“‘프리즌’에 대한 여러 평 중 불만 아닌 불만이 ‘왜 익호의 과거가 없느냐’는 것이더라. 심지어, 그게 없어서 이 영화는 ‘꽝’이라는 리뷰도 봤다.” 나 감독은 “예견했던 일”이라 했다. 초반에 쓴 시나리오 중엔 프롤로그에서 익호의 과거가 드러난 것도 있었다. 현재 교도소장(정웅인)이 보안과장이던 시절, 교도소 골칫덩이에 불과했던 익호와 손잡게 되는 이야기다. 익호가 교도소에 오기까지의 전사(前史)가 영화 중반부에 몽타주로 삽입된 버전도 있었다. 그런데 최종 버전 시나리오에선 이를 모두 걷어 냈다. 나 감독은 말한다. “익호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말 강력한 안타고니스트이길 바랐다. 어릴 때 보았던 ‘터미네이터2’(1991, 제임스 캐머런 감독)에 나온 T-1000(로버트 패트릭)처럼 말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익호에게도 그런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그런데 전사가 들어갈수록 익호가 점점 별것 아닌 사람처럼 약해 보이더라. 심지어 그가 ‘(교도소는) 내 세상이야’ 하고 말하는 것조차 변명처럼 들리더라.” 유건의 과거 플래시백이 있는데, 익호의 이야기까지 들어가면 흐름이 툭툭 끊기더라는 설명. 익호의 카리스마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대사들만 남기고 결국 다 빼 버린 이유다. 물론, 개봉 2주차에 접어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처음에 구상했던 익호의 과거 말이다. 영화의 여운을 위해 알고 싶지 않은 관객이라면, 아래 문단은 읽지 않고 지나쳐 주길 바란다.

나 감독은 ‘프리즌’ 속 익호의 대사를 먼저 인용했다. “‘기분 더럽냐? 안 죽고 버티려고 악을 쓸수록 점점 죄가 된다.’ 그거 자기 얘기다. 익호는 아마도 죄 없이 억울하게 수감됐을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는 조폭들 세상이다. 살아남으려 버티다 사람도 죽이고 말썽도 피우면서 형기가 늘어난 것이다. 정작 죄는 교도소 안에서 다 지은 셈이다.” 참, 익호에 대한 공포를 더욱 조장하는 특기(?)가 하필 ‘눈알 빼기’인 것은 “예상 못한 잔혹함으로 충격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액션 장르의 모던 클래식 ‘파이트 클럽’(1999,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계단 장면’만큼 충격적이길 바랐다고.

왜 단 두 명(목소리 출연 포함)의 여성 캐릭터만 등장할까. 

남성 중심적 작품 세계에서 가장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로 꼽히는 것이 바로 ‘창녀’와 ‘성녀’다. 여성 캐릭터가 거의 전무한 ‘프리즌’에는, 하필 이 두 가지 유형의 여성 캐릭터가 각 한 명씩 등장한다. 극 초반 살해당하는 성매매 여성(연송하)과 후반부 전화 수화기로 들려오는 유건의 어머니(손영실) 목소리다.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 기근과 전형성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은 요즘 ‘프리즌’의 이 지점을 지적하는 관객도 적지 않다. 

프리즌 / 사진=영화사 제공

프리즌 / 사진=영화사 제공

나 감독은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몰아가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극의 배경이 1990년대다. 요즘은 남자 교도소에 여자 교도관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거의 없었다. 억지로 여성 캐릭터를 집어넣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오프닝신에 등장한 성매매 여성의 경우, “살해 타깃이던 남성을 처리하고 돌아서던 죄수들이 사건 현장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돌발 상황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꼭 필요한 장치였다”는 것이다. 유건의 어머니 역시 유건이 익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고민하다 등장시켰다고 했다. 나 감독은 “여성을 전형적이고 성(性)적인 코드로 전시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며 “‘프리즌’에 대한 관객의 지적을 계기로 차기작에서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더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피고인’도 입주한 ‘프리즌’ 교도소 세트

프리즌 / 사진=영화사 제공

프리즌 / 사진=영화사 제공

‘프리즌’의 교도소를 보며 ‘어디서 봤는데’ 싶었다면, 당신은 지난 3월 종영한 TV 드라마 ‘피고인’(SBS) 애청자가 틀림없다. ‘피고인’의 주된 배경으로 등장한 전남 구 장흥교도소는 사실 ‘프리즌’이 먼저 ‘찜한’ 촬영지. 죄수가 교도소를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인 만큼, 나현 감독은 “‘프리즌’의 시간·공간적 배경이 리얼하지 않으면 허황한 이야기로 여겨질 것”이라 봤다.  

보안 시스템이 덜 전산화됐던 1995~1996년 김영삼 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다. 특히 하나의 캐릭터 역할을 해야 할 교도소는 기존 영화·TV 드라마에서 흔히 봤던 곳이어선 안 됐다. “비워진 지 2년 가까이 된 구 장흥교도소를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고. 허리 높이까지 자란 운동장 잡풀을 제거하고, 수도·전기·배관까지 손봐 “새로 수감자를 들일 수 있을 만큼 재정비했다”고 최지윤 프로듀서는 말했다. 극 중 유건이 갇히는 1평(3,3m²) 남짓한 독방은 실제 교도소에서 4인실로 쓰이던 곳. “처음 먹은 마음 끝까지 변치 않는다” 등 실제 교도소에 남아 있던 낙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벽을 꾸미고, 현장에서 발견한 목욕탕에서는 익호의 전용 욕실 장면을 새롭게 구상해 삽입하기도 했다. ‘피고인’ 등 다른 작품을 이곳에서 찍은 건 ‘프리즌’ 촬영이 끝난 이후의 일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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