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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경찰서 '고형사'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형사를…아냐구요?"

서울 은평경찰서에서 '고형사'를 찾던 중 애완동물용 침대와 사료 그릇을 발견했다. 이현 기자.

서울 은평경찰서에서 '고형사'를 찾던 중 애완동물용 침대와 사료 그릇을 발견했다. 이현 기자.

" 왔어?" 담배를 태우던 직원들이 반기며 고형사 엉덩이를 두드립니다.


업무에 지친 경찰서 직원들이 휴식을 취할 때 옆에서 재롱을 떠는 게 고형사의 주 업무입니다.

서울 은평경찰서에 사는 길고양 출신 '고형사'의 '사무실'은 야외 쉼터다. 이현 기자

서울 은평경찰서에 사는 길고양 출신 '고형사'의 '사무실'은 야외 쉼터다. 이현 기자


범인만큼 험상궂게 생긴 형사들도 고형사만 보면 무장해제가 되는 모양입니다. 

은평경찰서에서 '귀염둥이' 역할을 담당하는 고형사가 충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현 기자

은평경찰서에서 '귀염둥이' 역할을 담당하는 고형사가 충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현 기자

고형사는 지난해 가을 찬바람이 코끝을 스칠 무렵 은평경찰서에 나타났습니다. 이리저리 물어봐도 고형사가 몇 날 몇 시에 경찰서에 왔는지는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은평경찰서에 사는 길고양이 고형사. [사진 서울 은평경찰서]

은평경찰서에 사는 길고양이 고형사. [사진 서울 은평경찰서]

나이 : 미상

출신지 : 미상


미스테리한 그녀를 사람들은 '고형사'라 부릅니다. 형사과 경찰들이 돌봐주는 고양이라서 '형사과 고양이=고형사'가 됐습니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경찰서를 떠나지 않는 길고양이가 안쓰러워 강력계 형사들이 거처를 마련해줬다고 합니다.

길고양이 출신이지만 아무것이나 먹지는 않아요. 한 봉지에 2만5000원 하는 고양이 전용 사료를 먹는데 한 달에 두 봉지 정도 먹습니다. 간식으로 연어도 먹고요. 밥값은 '동료 형사'가 사비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업무 중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연어포를 뜯고 있는 고형사. 이현 기자

업무 중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연어포를 뜯고 있는 고형사. 이현 기자


 고형사에게는 사실 아픔이 있습니다. 지난겨울 고형사는 새끼를 뱄습니다. 초음파 검사도 받았는데 새끼 네 마리가 배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고형사는 혼자만 아는 곳에 새끼를 낳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형사가 몸이 축 늘어진 새끼 고양이를 물고 왔습니다. 고형사는 죽은 새끼를 입에 물고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이틀을 울었습니다. 인근 식당 주인은 족제비가 고형사 새끼들의 거처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동료 형사'들은 고형사 새끼들을 뒷산에 묻어줬습니다.

 경찰서 식구들은 "처음 봤을 때는 청소년 고양이였는데 이제는 어른이 다 됐다"고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고형사 등에 자꾸 혹이 생겨 걱정입니다. 완치를 위해서는 얼굴에 깔대기를 씌우고, 등을 핥지 못하게 열흘 동안 옆에서 돌봐줘야 하는데 일이 바빠 그럴 수가 없거든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형사는 봄볕을 쬐며 졸고 있네요.

숨은 고형사 찾기. [사진 서울 은평경찰서]

숨은 고형사 찾기. [사진 서울 은평경찰서]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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