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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 청탁" vs "근거 없는 '이심전심' 주장"…이재용 부회장 첫 재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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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도 인정하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특검팀 박주성 검사)
"정교한 증거 없이 예단과 선입견에 의한 '이심전심'식 기소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송우철 변호사)

특검팀의 망원경 전략과 삼성 측의 현미경 전략 맞붙어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혐의에 대한 첫 재판에서 특검팀과 삼성 측은 최순실씨 측에 제공된 433억원을 바라보는 극명한 시각 차를 그대로 드러냈다. 

특검팀은 2015년~2016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삼성그룹의 현안들과의 금품 지급과의 포괄적 대가관계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전략을 택했다면, 삼성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세 차례 독대 상황을 일일이 짚어가며 청탁이 구두로 오간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현미경' 전략을 구사했다.  

특검팀에선 박영수(65) 특별검사가 법정에 나서 '망원경'으로 보이는 큰 그림을 직접 그려 보였다. 


박 특검은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에 대해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경유착 범죄로 2명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수많은 공직자와 기업가가 처벌을 받았지만 그 고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의 아픈 상처이지만 국민의 힘으로 법치주의와 정의를 세운 소중한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사건은 뇌물 수수 혐의자인 박 전 대통령과도 연결되는 등 중요한 사건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에서 박 특검이 직접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일 박 특검은 "삼성 관련 재판과 블랙리스트 재판은 전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갖게 될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팀이 이날 제시한 50장 남짓 분량의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삼성 바이로직스 상장-삼성서울병원의 메르사태 대응 과정' 등의 삼성의 최근 현안들을 펼쳐 보였다. 특검팀 박주성 검사는 "당시 이 부회장에겐 삼성 경영권 승계 등 대통령의 도움 없이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는 다양한 현안이 존재했고 박 전 대통령도 이를 알고 뇌물을 받은 것”고 주장했다. 박 검사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엔 부정 청탁에 대한 인식 공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묵시적 청탁’은 대법원 판례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지난해 2월15일 등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상황을 일일이 짚어가며 "정교한 증거 없이 예단과 선입견에 의한 '이심전심'식 기소”라고 반박했다. 송우철 변호사는 “특검은 독대 당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나눈 대화라며 큰 따옴표를 사용해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는 피고인이 인정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직접 인용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검이 승계 작업에 대해 그린 그림에도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이는 대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가공의 틀을 급조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16일 영장실질심사 이후 40여 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부회장은 구속 상태이지만 수의 대신 흰 셔츠에 회색 정장차림으로 법정에 섰다. 얼굴은 다소 수척했지만 옅은 미소도 보였다. 이 부회장이 수용자 대기실에서 나와 피고인석에 도착하자 불구속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등 전직 삼성 임원들이 인사로 맞았다. 이 부회장은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또렷한 목소리로 ”삼성전자 부회장“이라고 답했다. 이후 검찰이 공소사실을 낭독하자 굳은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마련된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전 재판이 끝나자 이 부회장은 퇴장하며 박 특검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박 특검도 짧게 눈 인사를 했다.


한편 이날 같은 시간에 열린 최씨와 조카 장시호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 관련 재판에는 이영국(55) 제일기획 상무와 김재열(48) 제일기획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삼성 계열사 전ㆍ현직 임직원 7명이 법정에 선 셈이다.

김선미ㆍ문현경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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