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라운지] 외교가에 두 여성 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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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트렌세 필리핀 대사

"한류가 아시아 가치 더 높여"

수산 카스트렌세(65) 신임 주한 필리핀 대사는 46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다. 이번 한국 부임은 일곱 번째 해외 근무다.

1960년 필리핀 외교부에 들어간 이후 독일 본을 시작으로 방콕.시드니.워싱턴.오사카.토론토 등 세계 주요 도시를 거쳤다. 본부로 돌아와 3년째 동남아국가연합(ASEAN) 담당 차관보로 재직 중 한국 대사를 자원했다.

"아세안 업무를 담당하면서 아세안+3(한국.중국.일본)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시아에서 일 하고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한국이 아시아.태평양의 중심이더군요."

한류도 그의 관심을 한국으로 이끌었다. 그는 "한때 필리핀에서는 '할리우드 문화가 우리 아이들을 지배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었는데, 그걸 모두 한류가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필리핀 젊은이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린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속한 곳이니까요. 아시아인들이 아시아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는 일은 바람직하죠."

필리핀과 한국은 49년 수교 이래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은 7000여 명을 파병했고, 그중 100여 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확립과 자유 수호를 위해 싸웠다"며 "지금은 한국이 오히려 필리핀을 원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에는 한국인 5만 명이, 한국에는 필리핀인 4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외교 무대에서 반세기 가까이 일한 경험은 어땠을까. 그는 "필리핀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공직과 사회 진출이 활발해 여성 대사는 이슈가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외교관의 40%가 여성이며, 해외 공관 84곳 중 28곳(33%)은 여성이 공관장이다.

"지난해 아세안 회의에 참석한 필리핀 대표단은 수석대표와 차석.차차석 대표가 모두 여성이었어요. 우리는 '미녀 삼총사'로, 외무장관은 미녀 삼총사에게 지령을 내리는 '찰리'로 불렸지요." 그뿐만 아니라 대법관 14명 중 5명, 상원의원 23명 중 5명이 여성이다. 여성 대사의 강점으로는 "여성만의 매력을 활용하는 부드러운 외교"를 꼽았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그의 학습 목표는'물건 값을 깎을 수 있는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쿰즈 뉴질랜드 대사

"새내기 외교관 절반이 여성"

"과거 외교는 '남자들의 세계' 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여성 천하' 뉴질랜드에서 온 제인 쿰즈(43) 신임 대사는 "요즘 뉴질랜드 외교부에 들어오는 신입 외교관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세계 48개 공관 중 12개를 여성 공관장이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총독.총리.대법원장.하원의장을 모두 여성이 맡고 있다. 최대 기업인 '텔레콤 뉴질랜드' 최고경영자(CEO)도 여성이다. 대사는 "뉴질랜드가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양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편과도 성을 따로 쓰며 독립적인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 팀 스트롱은 뉴질랜드에서 재즈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해왔다. 이번에 아내를 따라 한국에 왔다. 앞으로 서울에서도 공연활동을 할 계획이다.

"보통 대사 부인들은 자선 행사, 사교 모임 등을 통해 활발히 내조를 하더라"고 묻자 그는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틀에 박힌 전형적인 역할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자기만의 적절한 외조 방식을 연구하고 있는데, 조만간 '미스터 스트롱과 미즈 쿰즈'만의 방식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자기의 재능을 발휘해 자선 콘서트를 계획중이라고 살짝 귀뜸했다.

호기심 많은 아들 카너(10)도 한국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배운 지 얼마 안 된 태권도 발차기가 수준급이다. 대사는 "한국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고 하던데, 또래들이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이 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며 평범한 부모의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가 펼쳐졌던 뉴질랜드에서와는 많이 다른 환경이지만 가족 모두 잘 적응하고 있어 다행이예요. 대도시 서울은 콘크리트 숲일줄 알았는데, 가까이에 큰 산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네요."

뉴질랜드에서 누렸던 대자연에 대한 갈증은 전국의 국립공원들로 대신할 계획이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한국어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 한국이 대사로서의 첫 부임지. 하지만 젊은 나이에 비해 경력은 화려하다.

주 유엔본부, 러시아, 호주 대사관 등을 거쳐 최근 2년간 본부 환경과 심의관을 지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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