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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건보료 개편, 시작이 반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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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현웅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구기획조정실장

신현웅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구기획조정실장

우여곡절 끝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편안은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경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월에 발표한 원안은 소득 중심의 단일 보험료 부과체계를 목표로 지역가입자의 평가소득 폐지, 재산·자동차보험료 비중 축소, 고소득 피부양자와 월급 외 별도소득이 많은 직장가입자 보험료 부담 등을 골자로 3단계에 걸친 개편안을 제시했다.

건보료 개편은 17년 숙원사업 #불합리와 미흡한 점 있더라도 #“현실적인 차선책” 인정하고 #문제 하나씩 해결하며 나가야

그러나 이러한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개편한다는 정부의 방침에는 공감하면서도 속도와 범위에 대한 논란은 지속됐다. 7년에 걸친 3단계(1단계 2018년, 2단계 2021년, 3단계 2024년) 개편안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국회와 많은 논의를 통해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5년에 걸친 2단계(1단계 2018년, 2단계 2022년)로 개편 시기를 앞당기는 데 합의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은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이에 그동안 건보체계의 개편 과정을 설명하고, 불만스럽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말해야 할 시점 같다.

필자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소득 기준 의료보험료 부과체계 개발에 관한 연구’에서부터다. 이 연구는 98년 10월 당시 227개 지역조합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현행 보험료 부과체계를 2000년 직장과 지역 건강보험 통합에 대비해 소득 기준으로 개편하기 위한 과제였다. 이 연구에서는 직장·지역 간 이원화된 보험료 부과 기준을 소득 기준의 단일 보험료 부과체계로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부과체계 관련 연구들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건강보험 통합 이후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같은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건강보험료 개편 여건이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건강보험 가입자 중 51.2%(2000년)가 지역가입자였으나 2003년 5인 미만 사업장이 지역가입자에서 직장가입자로 편입되면서 지역가입자 비중이 2015년 28.3% 미만으로 감소했다. 또한 현금영수증, 카드 사용 증가 등 자영업자 소득 파악 관련 여건들이 향상됐으며 건강보험 재정도 누적 흑자가 20조원을 넘어 지금이 건강보험료 개편의 적기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더욱이 베이비부머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시기적으로 더 이상 건강보험료 개편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개편안을 마련하고 국회와 합의한 것은 건강보험 통합 이후 지난 17년간 숙원 사업이었던 부과체계 개편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소득 중심의 단일 보험료 부과체계를 목표로 지역가입자의 평가소득을 폐지하고, 재산·자동차보험료 비중을 축소하는 등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를 경감해 줬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고소득 피부양자와 월급 외 별도소득이 많은 직장가입자에게는 추가적인 보험료 부과를 통해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국회와 정부가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개편의 시기와 범위를 앞당겨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소득 중심 보험료 부과체계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의미 부여를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이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일시에 소득 기준 단일 보험료 부과체계로 가길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정부 개편안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필자 또한 기획단 위원으로 참여했을 당시 현재의 부과체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소득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것이 이론적으로나 원칙적으로 매우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2015년 기획단 최종안이 확정된 이후 지난 2년간 소득 파악 문제가 해결됐는지, 국민 부담이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 등의 논란으로 인해 제도 개선의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결국 저소득층 누구에게도 아무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번 개편안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소득 중심의 단일 보험료 부과체계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번 개편안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는 앞으로 소득기준 보험료 부과체계로 개선하기 위해 소득 파악 문제 해결, 추가적인 소득 부과 확대, 재산보험료 점진적 폐지, 보험료 경감에 따른 재정손실에 대한 대책, 보험료 인상 세대에 대한 꼼꼼한 모니터링, 제도 개선에 따른 효과 평가 등 지속적이고 면밀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나쁜 것은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보다(all or nothing) 현시점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차선책(realizable possibility)’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이러한 시작이 지난 17년간 유지된 불합리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돼 소득 중심 부과체계 달성의 원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17년 만의 건강보험료 개편, 시작이 반이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구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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