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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확률 0.00001% … 이웅열 신약 투자 빛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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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웅열 회장이 5일 ‘인보사 성인식 ’행사에서 사업보고서를 받았던 날짜를 뜻하는 ‘981103’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5일 ‘인보사 성인식 ’행사에서 사업보고서를 받았던 날짜를 뜻하는 ‘981103’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코오롱]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웅열(61) 코오롱그룹 회장의 연봉(5개 계열사 급여·상여 포함)은 60억4600만원이었다. 수십억 연봉을 받는 재계 오너가 “내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했다”고 말하는 사업이 있다. 세계 최초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개발 프로젝트다.

세계 첫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시판 눈앞 #노년층 괴롭히는 대표 질병, 수술 빼곤 별 치료법 없어 #세포 배양 방식, 한 번 주사로 1~2년은 통증 크게 줄여 #이르면 하반기 국내 판매 … 5년 내 미국 시장 상륙 가능성

인보사 양산을 위해 공장을 증설하고 있는 충북 충주시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에서 5일 ‘인보사 성인식’이 열렸다. 사람으로 따지면 20세(만 19년)가 된 이 제품의 개발을 축하하는 행사다. 1남2녀를 둔 이 회장은 이날 임직원들에게 “인보사는 내게 네 번째 자식”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인보사에 애착을 갖게 된 배경은 1998년으로 되돌아간다. 그해 11월 3일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코오롱타워 본관 18층 집무실에서 이 회장은 ‘사업검토 결과보고서’를 받는다. 당시 코오롱 중앙연구소장은 “티슈진-C(당시 인보사 개발 프로젝트명)는 상품화까지 장기간이 소요되고 금액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고했다. 임직원 모두 ‘사업 성공률을 고려할 때 일찍 포기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고(go·투자하라)”였다. 이 회장은 “성공 가능성은 0.00001%였지만 미래 투자에는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룹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인보사 개발에)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인보사 성인식 토크쇼’ 행사에 참여해 화이트보드에 ‘나에게 인보사는 981103’이라고 기재한 배경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사업’이란 내용의 사업보고서를 받아본 연·월·일을 의미하는 숫자다.

인보사는 퇴행성관절염을 치료하는 제품이다. 뼈와 뼈가 만나는 부위(관절)가 아프거나 붓는 질환이 관절염인데, 관절염 중에서도 관절을 둘러싸 보호하는 물렁뼈(연골)가 닳아 없어진 경우 ‘퇴행성’ 관절염이 발생한다. 흔히들 ‘나이 들면 바람만 불어도 뼛속까지 시리다’고 말하는 사람 중 이런 환자가 많다.

관절염 치료법은 크게 ▶약물 ▶보조기구 장착 ▶수술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이미 연골이 닳아버린 퇴행성관절염은 종국적으로 수술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김수정 코오롱생명과학 바이오신약연구소장은 “퇴행성관절염은 주로 65세 이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수술 자체가 부담스럽고 수술해도 일부 증상이 남을 수 있으며 재활 치료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보사는 무릎뼈 틈새로 딱 한 번만 주사하면 최소 1~2년은 통증이 덜하고 관절 기능도 좋아진다.

인보사는 세포치료제다. 현재 개발된 세포치료제는 대부분 환자 본인의 세포(자가세포)를 이용해 개발하는데, 제조가 까다롭고 보관·운반도 어려운 단점이 있다. 타인에게 추출한 세포로 만든 인보사는 이런 단점까지 한꺼번에 극복할 수 있는 신약이다. 퇴행성관절염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4억여 명이다.

어떻게 개발한 걸까. 코오롱생명과학은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여섯 개인 선천적 기형을 가진 사람들(다지증·‘육손이’로 통용)에게 주목했다. 이들은 여섯 번째 손가락을 절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관절·연골 세포를 채취한다.

채취한 관절·연골 세포는 세포배양법으로 개수를 불린다. 1회 배양하면 10~20배가량 세포수가 늘어나는데 세 차례 반복하면 하나의 세포를 1000개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또 육손이 관절·연골에서 채취한 세포 일부에는 인공적으로 ‘TGF-베타1’이라는 성장인자유전자를 주입했다. 이 유전자는 연골세포를 분화·증식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관절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배양한 세포는 세포은행에서 냉동보관하다가 퇴행성관절염 환자에게 주사한다. 육손이 관절·연골에서 추출한 연골세포(1350만 개)와 성장인자유전자를 주입한 연골세포(450만 개)를 3대 1의 비율로 투입하면 퇴행성관절염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2016년 국제연골재생학회(ICRS) 발표에 따르면 ▶무릎 통증·기능성·활동성 ▶골관절염 ▶무릎부상·변형성관절증 등 대부분의 임상시험에서 통증을 느끼던 사람들이 인보사를 투입하고 나서 통증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인보사는 한국에서 임상(3상) 시험을 마치고 지난해 7월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황이다.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할 경우 하반기 시판된다. 가격은 품목허가 이후 약가산정 절차 과정에서 결정된다. 다소 허가 기간이 긴 미국의 경우 임상(2상) 시험까지 완료하고 임상(3상) 시험 허가를 받았다. 미국에서 통상 3상이 2~3년, 품목허가가 1~2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안에는 미국 시장에서도 인보사가 판매될 전망이다.

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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