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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주기 20분 만에 땀 흠뻑 … 눈코 뜰 새 없었던 ‘아빠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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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가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날 9시간 동안 일일 보육교사를 맡아 아이들을 돌봤다. [사진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가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날 9시간 동안 일일 보육교사를 맡아 아이들을 돌봤다. [사진 김성룡 기자]

“선생님 코 나와요.” “선생님 쉬 마려워요.” “선생님 물 쏟았어요.”

어린이집 일일 ‘보육교사’ 체험기 #반지 착용 안 되고, 보건증은 필수 #하루종일 놀이·식사·청소 다 챙겨야 #세 살 아들 육아경험 있어도 ‘쩔쩔’ #학대 오해 피하려 곳곳에 CCTV #낮잠 땐 토닥토닥 대신 쓰다듬기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일원어린이집의 ‘꽃망울반’(3세반)에선 보육교사를 찾는 요청이 이어졌다. 오전 9시 어린이집에 도착한 기자는 ‘아빠 선생님’이란 호칭과 함께 분홍빛 앞치마부터 받았다. 어린이집의 하루를 경험하고 보육 체계의 현실을 직접 관찰하자는 취지에서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보육교사 일일 체험’이었다. 아빠 선생님은 담임인 ‘엄마 선생님’ 구현주 보육교사를 보조해 15명의 아이들을 맡았다. 처음에 어색해하던 민규는 수시로 아빠 선생님에게 질문을 쏟아냈고, 재민이는 손을 잡고 위로 올려달라며 장난을 쳤다.

생후 27개월 아들을 둬 제법 육아에 자신이 있었지만 어린이집에선 별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손가락에 반지를 끼면 안 되고, 배식을 하려면 각종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보건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새로 알았다. 교실에선 수시로 아이들 콧물을 닦아주고, 물이나 음식 흘린 걸 치워야 하며, 같이 책을 읽어주다가도 투닥거리는 걸 말리느라 앉을 새도 없었다. 오전 11시 공원 놀이터에서 야외활동을 할 때는 “아빠 선생님 저 잡아보세요”라며 도망가는 아이들을 따라 다니느라 20분도 안 돼 온몸이 땀에 절었다.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가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날 9시간 동안 일일 보육교사를 맡아 아이들을 돌봤다. [사진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가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이날 점심으로 미역국, 연근조림 등이 나왔다. [사진 김성룡 기자]

식사 시간이 됐다. ‘밥을 억지로 먹여 토하게 했다’ ‘안 먹는 아이를 때렸다’ 등 학부모들을 근심케 하는 아동학대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파프리카·우유(오전), 크림빵·두유(오후)가 나온 두 번의 간식 시간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북어미역국과 연근조림, 콩나물무침 등이 나온 점심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콩나물 더 주세요” “김치 더 주세요”라며 손을 들었고, 국에 밥을 말아 깨끗이 비웠다. 보육교사도 아이들이 먹는 밥·간식을 똑같이 덜어서 같은 공간에서 먹는다.

구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간식 먹고 밥 먹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다.

다른 반은 어떤지 살펴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각 교실 구석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다. 2015년 인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설치가 의무화된 CCTV는 어린이집 풍경을 바꿔놨다. 이곳에서도 ‘학대’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재울 때 등을 두드리지 않고 쓰다듬도록 행동수칙이 정해졌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같은 이유로 자제한다. 교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행동수칙을 수차례 다짐받았다. 구 교사는 “학부모가 직접 CCTV를 보자고 한 적은 없었지만 교실에 설치돼 있는 것 자체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가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날 9시간 동안 일일 보육교사를 맡아 아이들을 돌봤다. [사진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가 지난달 29일 서울 일원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야외 활동을 하고 있다. 도망다니는 아이들을 잡으러 뛰어다니느라 20분만에 녹초가 됐다. [사진 김성룡 기자]

어린이집은 보통 오후 1~3시가 ‘낮잠 시간’이다. 낮잠을 자지 않는 5세반을 제외하면 어린이집 전체가 조용해진다. 까불던 지율이의 배를 20분간 쓰다듬어주며 힘들게 재웠다. 하지만 아이들이 잔다고 교사들도 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행동에 특이사항은 없는지 ‘관찰일지’를 쓰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바쁠 때가 더 많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아이들이 ‘배꼽인사’를 하고 보호자와 함께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떠난 후에도 업무는 이어진다. 다음 날을 준비하며 알림장을 작성하고 교실·복도·화장실 등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또 한 명의 아이라도 남아 있으면 저녁 9시30분까지 ‘시간 연장반’을 연다. 아빠 선생님도 청소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남은 민규를 시간 연장반에 인계해주고 오후 6시 모든 일과를 마무리했다.

이처럼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는 보육교사지만 처우는 열악한 편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국공립’도 월급이 적어 그만둔 교사가 많다. 특히 ‘아빠’ 역할을 맡아줄 남교사를 두기 쉽지 않다. 하재희 어린이집 원장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남자 선생님들이 꽤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보육교사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구 교사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가도 어느 순간 다 풀리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라며 웃었다.

글=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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