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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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2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화목 난로와 기름 난로를 청소하고, 장작을 정리하니 새삼 봄의 상냥한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긴 겨울은 5톤 참나무를 한 줌 재로 만들었고 전기계량기의 수치를 듬뿍 올려 주었으며, 밑 빠진 독 같았던 기름통의 텅 빈 울림을 남겼다. 오래된 주택에서 보내는 겨울은 고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음 겨울에는 이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다짐부터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도시남자 이장희, 전원 살다 <25>

이제 겨울도 끝나 가고, 길지 않았던 1년간의 연재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다. 늘 지면이 부족해서 담고 싶은 그림들을 골라야 했던 행복한 고민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물끄러미 창밖의 숲을 바라본다. 여름이 길어질 거라는 미래에 대한 낯섦 때문일까. 겨울의 차가움이 각별해진다. 혹독한 추위 뒤에 찾아오는 이 봄볕의 아름다움을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도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름 모를 새가 가까운 가지에 앉았다. 나는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그 생명체를 바라본다. 사진을 찍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많이 보고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담는 수밖에 없다. 이내 새는 날아가고 흔들리는 가지 위로 여운만 남는다. 가지에는 잔뜩 웅크리고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는 겨울눈들이 소담스럽다. 발코니에 떨어진 작은 플라스틱 조각에서 반사된 햇빛이 눈을 간지럽힌다. 멀리 사철나무 잎들의 가지런함이 한없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나는 봄 향취에 젖어 새를 그림 속에 담으려 했던 생각을 잊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욕구는 금세 다시 찾아올 것이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장희 :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저자. 오랫동안 동경해 온 전원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과 파주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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