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대법원 충돌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법관 인사파동과 관련, 청와대 내부에서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 인사에 대해 대통령이 국회동의안 제출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거론하고 나섰다. 청와대의 의중이 사법개혁 추진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섣불리 나설 수 없다는 입장 아래 12일 현재 청와대는 공식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관부서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제2의 사법파동이 오는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이 경우 청와대도 파동의 회오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대법원이 변협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제청자문위를 거친 3명의 인사 중 한명을 노무현(盧武鉉)대통령에게 제청해 올 경우 盧대통령은 국회에 동의안을 내느냐, 아니면 동의안 제출을 거부하느냐라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청와대와 사법부 간에 전선이 형성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질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취임 초기에 있었던 검찰파동은 비교할 바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盧대통령으로서도 역풍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현재 제청을 검토 중인 인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盧대통령으로선 사법부 내 이른바 개혁세력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가다듬어온 '연공서열 타파'의 오랜 사법개혁 구상이 좌초할 수도 있다.

盧대통령은 임기 중 모두 13번의 대법원 인사를 할 수 있다. 2005년 임기가 만료되는 최종영(崔鍾泳)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 13명 가운데 12명의 임기가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측근들에게 보수 일색이 아닌 진보와 보수의 공존, 소수자 및 약자의 이익보호가 가능한 대법원 구성을 강조해 왔다.

그동안 청와대가 盧대통령 직속으로 사법개혁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 것도 이번 대법관 인사를 겨냥한 것이다. 연공서열식 대법관 인사 관행을 타파하는 물꼬를 트는 전기로 이번 인선을 주목해 왔다.

대법원은 대법원대로 盧대통령의 의중과 청와대 분위기에 따라갈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헌법상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최고위직 인사를 청와대 눈치를 보며 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임기가 2년밖에 안 남은 최종영 대법원장은 개혁보다는 사법부의 안정을 택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공개돼서는 안될 추천인사들마저 드러나고, 사법부 내에서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하게 퍼져가고 있는 것이 대법원의 선택 폭을 오히려 좁히고 있다.

사법권을 침해받을 수 없고, 상황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이번 사안을 법률해석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자존심 문제로까지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 침묵 속 긴장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다.

강민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