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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32. 수퍼보울서 배운다…'팀이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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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를 미국의 영웅으로 탄생시킨 미식축구 수퍼보울에서 되돌아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 워드의 피츠버그 스틸러스는 경기 초반 시애틀 시호크스 수비진을 뚫지 못했다. 스틸러스는 0-3으로 뒤졌다. 스틸러스는 2쿼터 종료 3분여를 남기고 워드가 36야드 패스를 받아내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볼은 상대방 엔드존 코앞(3야드)에 있었고, 스틸러스에는 네 번의 공격권이 생겼다.

이때 스틸러스와 시호크스 선수는 물론 관중과 TV 시청자 모두 한 선수에게 시선을 꽂았다. 스틸러스 러닝백 제롬 베티스였다. 베티스는 역대 NFL 러싱 5위의 베테랑 선수고, 육중한 체격 때문에 '버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워드 못지않은 천진한 웃음으로 스틸러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이번 수퍼보울이 베티스의 은퇴경기라는 게 큰 화제였다. 그 베티스에게 수퍼보울 첫 번째 터치다운의 영광을 줄 것이라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스틸러스 빌 카우허 감독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첫 번째 시도, 두 번째 시도에서 모두 베티스의 중앙돌파를 지시했다. 스틸러스 팬 모두 그의 아름다운 터치다운을 원했지만 시호크스 수비진은 이를 충분히 예상했고, 막아냈다. 이제 세 번째 시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에도 베티스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공격이 시작됐다. 쿼터백 로살리스버거가 몸을 오른쪽으로 틀며 베티스에게 볼을 넘겨주는 시늉을 했다. 베티스는 볼을 받는 척하며 수비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로살리스버거가 베티스의 뒤로 돌았고, 몸을 날린 베티스의 위로 점프했다. 베티스의 블로킹을 방패 삼아 로살리스버거는 엔드존을 통과했고, 스틸러스는 7-3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스틸러스는 이후 워드의 빛나는 활약에 힘입어 한 번도 리드를 뺏기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이 대목은 무얼 말하는가. 베티스의 터치다운을 고집해 개인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보다 '그 선수가 몸을 날려 블로킹을 함으로써 팀이 리드를 잡는 게 먼저'라는 것이 팀 스포츠의 기본이다. 나(개인)보다 팀.조직의 영예가 먼저라는 팀 퍼스트(team first) 정신의 발현이다.

워드도 그 정신이 투철한 선수다. 그는 패스를 잘 받는 선수보다 동료 공격수를 위해 블로킹을 잘하는 선수로 더 인정받는다. 그래서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워드는 그런 철학을 바탕으로 올스타가 됐고, MVP가 됐다.

야구 감독들도 같은 논리를 펼친다. 그들은 경기 때마다 "개인기록을 생각하지 말고 상황에 맞는 팀배팅을 하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팀배팅을 잘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 강팀이라고 입을 모은다. 19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표팀이 소집된다. 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스틸러스가 수퍼보울에서 보여준 정신, 바로 '팀 퍼스트'가 아닌가 싶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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