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법연구회 세미나 “대법원장 권한 나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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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모든 법원과 법관을 관리·통제할 수 있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민주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개혁저지 파동 부른 법원 학술모임 #법관 507명 e메일 설문 결과 발표 #‘윗선에 반하는 의견 땐 불이익’ 88%

현직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권한 집중을 지적하는 주장을 내놨다. 법원 내 최대 학술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5일 연세대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대회에서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영훈(43·연수원 30기) 서울고법 판사는 사법개혁 대상으로 대법원장의 인사권 문제가 지적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학회 참여를 제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법원행정처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임종헌(58·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9일 사임했다. 대법원은 이인복(사법연수원 석좌교수)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 중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김 판사는 507명의 판사가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주제는 ‘국제적 관점에서 본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법관 설문조사’였다. 앞서 연구회는 지난달 양승태 대법원장 등 대법관을 포함한 전국 법관 2900여 명에게 e메일 설문지를 보내 참여를 독려했다. 이 조사가 알려지면서 학회 가입 압력 등의 논란으로 이어졌다.

판사들은 ‘대법원장과 각급 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 한 법관이 보직·평정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많이 했다.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27.5%),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60.8%)는 부정적 답변이 88.3%였다.

‘주요 사건에서 상급심 판결례의 판단 내용에 반대하는 판결을 한 법관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항목에서도 부정 답변이 45%였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게 돼 있는 현행 대법관 임명 절차를 수정해야 한다는 응답도 71.6%였다. 또 응답자의 96.6%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법행정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승진·전보 등 인사 문제가 가장 많이(89%) 지적됐다.

설문을 주관·발표한 김 판사는 “내부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설문이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사법부도 대부분의 다른 조직처럼 도제식 체제로 이뤄져 있다. 현실론과 이상론 사이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회는 이날 발표 내용과 판사들의 의견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건의할 예정이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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