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침 조약은 필수" 北, 美에 先양보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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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달 말 6자(남북, 미.일.중.러)회담을 앞두고 나온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13일 담화는 북핵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그동안 최대 쟁점이던 북한의 핵포기 방식과 대북 안전보장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만큼 6자회담 때도 같은 내용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담화가 제시한 해결 방식은 미국의 선(先)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6자회담에서의 북.미 간 줄다리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측이 내놓은 핵 문제 해법은 조건부 일괄타결 방식이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핵 사찰을 수용하고 핵 억제력(핵무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의 예로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외교관계 수립, 미국의 북-타국 간 경제협력 불(不)방해를 들었다.

다시 말해 이 세가지가 먼저 이뤄져야 핵 폐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베이징(北京) 3자회담(북.미.중)에서 미국에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게다가 북한은 대북 안전보장 방식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검토 중인 의회 결의안을 통한 서면 보장을 거부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북.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돼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

북한은 아울러 중국과 러시아 등이 포함된 집단 안전보장 방식에도 등을 돌렸다. 안보 위협의 주체는 미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중.러와 선린우호 조약을 체결했으며, 한.일 양국의 안보정책은 미국에 종속돼 있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의 이번 담화 의도는 여러가지다. 첫째는 핵 폐기와 사찰이 호락호락 이뤄질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서방 언론에 보도돼온 대북 체제보장+경제지원이 핵 문제 해결의 조건이 아니라 '불가침조약 체결+북.미 국교 정상화+α'가 해법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둘째는 6자회담에서의 협상력 제고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해법을 내놓은 것은 협상 전에 몸값을 올리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이 14일 워싱턴에서 대북 제안 내용을 협의하기 직전에 담화를 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셋째는 이번 회담을 북.미 양자 구도로 끌고 가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모든 현안을 미국과 연결시키고 나머지 국가들을 배제함으로써 회담을 북.미 양자회담 쪽으로 몰고 가겠다는 전략을 드러낸 것이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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