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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조율 너무 많아, 예상 못한 송곳질문 해야 꼼꼼히 검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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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긴급진단 토론은 검증이다 

“제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1호 공약으로 내놨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협력해 지원센터와 전문병원을 곳곳에 설립해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문재인 후보)

전문가들, 토론 이렇게 바꾸자 #“컷오프 엄격 적용해 후보 압축을 ”

“아주 좋다. 치매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면서 지방정부에 충분한 권한과 예산을 줘야 한다.”(최성 후보)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6차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는 최성 후보와의 ‘1대1 맞짱토론’에서 치매 공약을 놓고 4분간 덕담식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후보는 17일 4차 토론회에서도 똑같은 문답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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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발표한 치매 국가책임제가 있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전국 곳곳에 치매병원 설립을 공약했다. 어떻게 생각하나?”(문 후보)

“감사드린다. 제 아버지가 재작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다.”(최 후보)

민주당 경선 후보 TV토론회에선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반복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TV토론은 곧 검증이다. 미디어 학자나 정치 학자들은 “조기 대선으로 토론회의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부각됐다”며 “현재의 토론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유권자에게 후보자에 대한 검증 기회를 주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사전원고 없애라=민주당 토론회는 사전에 짜인 질문과 답변으로 20여 분이 소요된다. 토론 도중 “모범 답안을 읽는 학예회식 토론”(이재명 후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면 22일 국민의당의 첫 후보 토론회에서는 사전원고 없이 패널들이 15분씩 질문을 던지는 ‘리더십 토크’ 코너가 주목을 받았다. 이날 후보들은 패널로 참여한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이 던지는 송곳 질문에 진땀을 흘렸다. 김 원장은 박주선 후보에게 “성인지 예산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지 않다”며 여성 정책에 대해서만 7분가량 집중 질문을 던졌다.

가상준 단국대(정치학) 교수는 “우리는 토론 전 사전조율이 너무 많다”며 “후보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검증에 참여해 예기치 않은 질문으로 꼼꼼한 검증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정치외교학) 교수는 “지나치게 지엽적인 질문으로 검증하려는 것은 곤란하다”며 “후보별로 질문의 적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한번에 모든 주제를 다루지 말자=엄태석 서원대(행정학) 교수는 “토론회마다 모든 주제에 발을 걸치려고 하다 보니 정작 한 가지 주제에서도 제대로 된 토론이 진행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후보 간 치러진 6차례의 토론회에서는 개헌에서부터 대연정, 법인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등 정치 현안과 정책 문제가 망라되곤 했다. 엄 교수는 “토론회마다 두 가지 정도의 심층 테마를 정해 토론을 벌인다면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1대1 토론으로 충분한 시간을=21일 민주당 토론회의 ‘1대1 맞짱토론’에서 문 후보는 MBC 정상화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뒤 안희정 후보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안 후보는 “(4분 중) 3분 말하고 1분을 줬다”고 탓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토론에서도 경제 정책이나 외교 전략에 대해 질문하면서 “1분 안에 답변을 말씀해 달라”는 장면이 반복됐다. 한규섭 서울대(언론정보학) 교수는 “1대1 상호 토론 시간을 더 확대해 유권자들에게 대선후보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경우 후보별로 직접 토론을 이끄는 ‘주도권 토론’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후보에게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 때문에 오히려 1대1 토론으로 후보의 실력이 드러나는 걸 막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4명이 보통 100분간 토론을 진행하다 보니 1인당 발언시간이 25분 정도에 불과하다. 엄태석 교수는 “각 당에서 ‘컷오프’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 후보를 압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안효성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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