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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9명, 남겨진 이들은···“미안하다. 사랑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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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2일이 지나서야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 목 터져라 외쳤다. 바다만큼이나 암담했던 뭍이지만 가족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3년을 견뎠다. 세월호가 데리고 가라앉아 버린, 세상 많은 사람이 잊고 가족들만 가슴 저미게 기억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봤다. 미수습자 9명의 명단은 단원고 2학년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단원고 고창석·양승진 선생님, 이영숙씨, 권재근·권혁규 부자(父子)다.


◇단원고 2학년 남현철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남현철군.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남현철군.

남현철군은 기타를 치고 곡을 쓰는 고등학생이었다. 외아들의 기타 사랑을 잘 아는 아버지 남경원(48)씨는 아들이 빨리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기타 한 대를 팽목항에 가져다 두었다. 기타에는 “아빠·엄마는 죽을 때까지 너랑 함께 살아갈 거야”라고 썼다. 다음은 남군이 쓴 가사 중 일부다. 가수 신용재씨가 불렀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많이 힘든 그대. 힘이 든 그댈 안아주고 싶어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중’

◇단원고 2학년 박영인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박영인군.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박영인군.

팽목항 구석에 놓인 축구화 두 켤레가 서해 바람을 맞으며 낡아갔다. 축구화는 박영인군의 어머니 김선화(44)씨가 둔 것이다. 박군은 운동을 좋아했다. 아빠와 함께 야구 보는 걸 좋아했고 체대에 가겠다는 꿈도 있었다. 김씨는 아들이 살아있을 때 축구화를 사주지 못한 것만 생각하면 애가 끊어지는 듯했다. ‘사랑한다 내 아들’, 축구화에 적힌 일곱 글자다.

◇단원고 2학년 조은화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조은화양.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조은화양.

조은화양의 책상 위에는 작은 따개비 하나가 올려져 있다. 어머니 이금희(47)씨가 지난해 2월 배를 타고 세월호 근처에 갔다가 ‘딸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에 가져왔다. 딸을 기다리는 2년 동안 이씨는 간질환, 고혈압, 당뇨 등 숱한 병을 얻었다. 하지만 ‘아프면 딸을 못 찾는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아침이면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시시때때로 카카오톡을 보내는 살가운 딸이었다. 먹을 것은 오징어를 좋아했다. 가끔 자원봉사를 하러 팽목항에 오는 청년은 조양의 차례상에 오징어를 올려줬다.

◇단원고 2학년 허다윤

만화가 이동씨가 그린 미수습자 허다윤양.

만화가 이동씨가 그린 미수습자 허다윤양.

수학여행을 가기 싫다고 보채던 딸에게 아버지 허흥환(54)씨는 용돈 6만원을 쥐어주며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 친구도 많이 사귀라”며 달랬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6만원 중 5만7000원만이 허다윤양의 유품으로 나왔다.
참사 며칠 전, 네 가족은 가족사진을 찍었다. 허양은 세월호 리본 색과 비슷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미소를 지었다. 사진을 찾기로 한 날이 하필 허양이 떠난 4월16일이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허양은 항상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희귀병을 앓는 어머니 박은미(47)씨 걱정에 철이 일찍 든 둘째딸이었다. 추우나 더우나 딸이 좋아했던 민트 색깔 스웨터를 입고 딸을 기다린 박씨는 참사 후 스트레스로 오른쪽 청력을 잃었다.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고창석씨.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고창석씨.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짧다고 해 제자들은 고씨를 ‘또치샘’이라고 불렀다. 인명구조 자격증이 있고 수영도 잘하는 체육 선생님이었지만 진도 바다에서는 나오지 못했다. 자신이 나오는 것보다 제자들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살아 나온 학생들은 “선생님이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빨리 나가라’고 했다”며 울었다. 2005년 안산 원일중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 학생 휴게실에 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씨의 분향소를 찾은 옛 제자들은 “그 때도 선생님은 우리를 가장 먼저 대피시키고 혼자 소화기로 불을 껐다”고 회상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기다리는 것밖에 못해 미안해. 다시 만나면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편지를 썼다.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양승진씨.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양승진씨.

양승진씨의 부인 유백형(54)씨는 남편을 ‘정 많고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유씨 말대로 양씨는 무섭기보다 다정한 학생주임 선생님이었다. 양씨는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을 구조하러 갑판에서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는 23일은 부부의 결혼기념일, 24일은 양씨의 생일이다. 사고 후 남편과의 연애시절 사진을 꺼내보는 습관이 생긴 유씨는 “남편 뼛조각이라도 찾아 볕드는 곳에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영숙씨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이영숙씨.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이영숙씨.

제주행 세월호는 이영숙씨에게 ‘아들과 함께 살 꿈’을 이뤄줄 선박이었다. 이씨는 어려운 생계 때문에 외아들을 어릴 적부터 시댁에 맡겨두고 홀로 일했다. 그 사이 아들은 서른이 훌쩍 넘었다. 오래 떨어져 산 것이 아쉬웠던 모자는 2015년부터 제주에서 함께 살자고 약속했다. 그날은 이씨가 인천에서 제주로 이삿짐을 옮기는 날이었다. 모자는 결국 같이 살지 못했다. 아들 박경태(32)씨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판넬에 ‘엄마 춥지 않으세요. 아들은 떨고 있어요. 돌아와요 제발’이라고 적었다.

◇권재근·권혁규 부자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권재근씨.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권재근씨.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권혁규군.

만화가 이동수씨가 그린 미수습자 권혁규군.

엄마는 죽었고 오빠와 아빠는 찾을 수 없었다. 다섯 살 난 여동생 한 명만 살아 나왔다. 여동생은 “오빠(권혁규·당시 6세)가 구명조끼를 벗어서 입혀줬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고향인 아내와 두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 권재근씨는 삭막한 서울 살이 대신 제주 귀농을 결심했다. 제주도로 온 가족이 이사하던 날,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아비규환 속에서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준 오빠 권군이 단원고 학생들에게 “형, 우리 죽어요?”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형아가 너 살릴게”라고 답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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