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43) 내설악 지킴이 이경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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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외설악 권금산장의 유창서씨가 '털보파' 산장지기의 대부라면, 내설악 수렴동 대피소에 사는 이경수씨는 '비털보파' 산장지기를 대표한다.

설악의 주릉은 공룡능선이다. 그 공룡능선을 기준으로 서쪽인 내륙쪽을 내설악이라 하고 동쪽인 바다쪽 산자락을 외설악이라 부른다. 그 내외 설악은 '내외'하는 부부처럼 서로 성(性)이 다르며 산세가 다르고 분위기 또한 다르다. 내설악은 집안을 지키는 안사람처럼 푸근한 모성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외설악에서는 엄한 부성으로 다스려지는 서릿발 선 암릉이 연이어진다. 그렇게 다른 내외설악이 금실 좋은 내외처럼 맞붙어 '설악'이라는 하나의 산악 세상을 산사람에게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도 내외설악은 그 산세만큼이나 다르다. 내설악에는 설악에서 태어난 토박이들이 주로 살고, 외설악에는 설악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설악을 사랑하여 설악으로 찾아들어간 외지인들이 더 많이 산다. 내설악은 설악산 사람들의 삶의 터였고, 외설악은 설악을 찾은 타관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설악에서 태어나 내설악에서 평생을 보낸 내설악 수렴동 계곡의 이경수씨를 찾아간 1990년의 어느 겨울날은 산자락마다 그리움으로 쌓이던 눈발들과 함께 고스란히 기억된다.

그날 이씨는 꽁치 통조림이나마 안주로 내놓으며 강원도 쪽으로 갈 때마다 마셨던 겨울달-경월 소주를 따르며 맞아 주었다.

"산에서 사람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 미안합니다. 죄송하구요."

수렴동이 막 어둠에 잠길 무렵에 나그네를 만나 기뻐서 오히려 미안하다는 이씨는 취해서 죄송하다는 뜻인지 전혀 미안해할 경우가 아닌데도 후렴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주억거린다.

불콰한 낯빛이지만 취한 것은 아닌 듯했다. 시중들던 부인이 저녁 반주 겸해서 소주를 서너병밖에 들지 않았다고 귀띔해줬다. 이씨의 평소 주량은 소주 두되 정도로 알려져 있다.

"술 먹다가 다들 갔지요. 용대리의 술친구들 최운봉이, 광택이, 우춘이 뭐 죄다 술 먹다 죽고 혼자 남았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살아남아 미안하다는 그는 사실이지 인제군 원통면 용대리의 살아 있는 신화라는 이야기를 듣는 설악의 산사람이다.

용대리 태생으로 군복무를 마친 64년 설악산에서 살기 위해 내설악으로 들어왔다가 봉정암에 첫 거처를 정하고 머리를 깎으려다 단념했다. 그 이태 후부터 영시암터.백담사.오세암 등 내설악 계곡에 있는 절간을 전전하며 불목하니 처사 노릇으로 입에 풀칠을 했다.

지금의 수렴동 대피소와는 70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그때부터 혼자서 관리해오다가 74년 인제군으로부터 임대받았다. 그 후로 관리권이 국립공원 측이나 강원도 장학회로 넘어갈 뻔했으나 그에게 붙어다니는 '신화적' 이미지와 그가 끝까지 믿어 보겠다는 설악의 산신령이 지켜주었는지, 오늘날 '수렴동'의 이름은 '이경수'와 동격으로 불리고 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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