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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토니 에드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너의 정체는?

중앙일보

입력

‘토니 에드만’(원제 Toni Erdmann, 3월 16일 개봉, 마렌 아데 감독)을 한마디로 소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연 배우 샌드라 휠러조차 “영화가 너무 복합적이어서 ‘아버지가 딸의 직장에 찾아간다’는 말 다음엔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2시간 42분 동안 도무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게 관객을 끌고 가다, 적어도 두 번 포복절도를 일으키고, 마침내 가슴으로 눈물 흘리게 만드는 작품이니 말이다. ‘LA 타임스’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 전 세계 주요 매체들이 “지난해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사실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했다”고 평한 ‘토니 에드만’의 면모를 파헤쳤다.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정체1 
웃음과 감동,
사회적 풍자까지 놓치지 않는

‘토니 에드만’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 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택배 배달원에게까지 장난을 못 쳐 안달인 백발의 남자. 그 장난이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가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치고, 주변 사람들이 황당해 하는 그 어색한 공기를 영화는 천천히 담아낸다. 그 호흡이 굉장히 여유롭다. 여느 할리우드 장르영화처럼 재빠른 편집을 통해 극적으로 상황을 간추리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유럽 작가영화의 관조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독일에 살던 빈프리트가 냉철한 딸 이네스(샌드라 휠러)가 일하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날아가, 우스꽝스러운 의치와 덥수룩한 가발을 쓰고, 이네스와 주변 인물들에게 자신을 사업가 혹은 독일 대사 ‘토니 에드만’이라 소개하며 벌어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말이다. 독일의 마렌 아데(40) 감독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안이하게 생략하는 걸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극 중에서 인물이 그 상황의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간다는 믿음을 주려 했고, 이를 연출의 최우선으로 삼았다”는 것.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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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처한 상황을 천천히 복합적으로 살피는 연출 방식은, 극 중반을 넘기며 대단한 효과를 발휘한다. 예컨대 빈프리트의 장난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된 이네스를 비추는 장면이라든가, 이네스의 생일 파티에 빈프리트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 벌어지는 촌극이 박장대소를 일으키는 것. 이는 그 아래 켜켜이 쌓인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 장면들은 엄청난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짠한 감동과 함께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는 통렬한 희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칸영화제 상영 당시 많은 언론들이 이 영화를 ‘놀라운 코미디’라 일컬었는데, 그것은 아데 감독과 두 주연 배우에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진지하고 슬픈 드라마라 생각하며 연기했다”는 것이 휠러의 말이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말고도, ‘토니 에드만’은 이네스가 일하는 모습을 통해 성차별적 직장 문화를 신랄하게 꼬집기까지 한다.

정체 2  
유치찬란 아버지 vs 냉소적인 딸, 그들의 갈등에 주목할 것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유머 감각을 잃지 마세요.” 빈프리트, 아니 토니 에드만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향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건네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빈프리트는 “이것저것 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삶에서 “뭘 이루는 데만 치중할 게 아니라” “붙잡아 둘 수 없는 순간을 즐기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머는 그가 그 순간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네스는 그와 반대다. 이네스에게는 일과 성공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밤낮 없이 일한다. 독일에 있는 가족과도 멀어진 지 오래다. 그의 직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어떤 업무를 외주로 돌릴지, 큰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부서의 누구를 잘라 그 일을 외부 업체에 맡길지 조언하는 것이다.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빈프리트에 비할 때 이네스가 비인간적이고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 부녀의 갈등은 좀 더 깊은 뜻을 지닌다. 언제든 유머와 웃음이 먼저인 빈프리트. 그는 모든 걸 ‘좋게’ 넘기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네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가혹한’ 일이다. 토니 에드만이 된 빈프리트가 “유머 감각을 잃지 말라”는 말을 건넨 이는, 곧 집이 헐려 거리로 내쫓길지 모르는 사람이다. 아데 감독은 그 갈등이 세대 간의 것이라 말한다. “빈프리트는 전형적인 전후(戰後) 세대다. 자유로운 세계를 믿고,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위해 싸웠으며, 아이들에게 그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국경을 허물면서 전 세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빈프리트의 세대가 옹호했던 인도주의는 가라앉는 섬, 너무 순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다. 나 역시 더 이상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빈프리트와 이네스 중 누가 옳고 그른지 답을 내리려 한 것은 아니다.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다.”

정체3
마렌 아데,
새로운 작가 감독의 등장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토니 에드만’은 아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세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 감독으로 떠올랐다. 그의 첫 번째 장편 ‘나만의 숲’(2003)은 제21회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두 번째 장편 ‘에브리원 엘스’(2009)는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나만의 숲’은 시골 출신 신참 교사 멜라니(에바 로에보)가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이웃 티나(다니엘라 홀츠)와 친해지는 데 매달린 나머지 자꾸 거짓말하게 되는 이야기다. ‘에브리원 엘스’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으로 휴가를 떠난 젊은 연인 기티(버짓 미니크마이어)와 크리스(라르스 아이딩어)의 이야기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나(니콜 마리슈카)와 한스(한스 요칸 바그너) 부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두 편을 나란히 보면, 아데 감독은 인간관계의 미묘한 질서와 변화를 파헤쳐 각 인물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건 ‘토니 에드만’도 마찬가지다. 아데 감독은 이 영화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이야기”라 정의한다. “극 후반, 이네스는 정신 나간 일을 함으로써 혹은 아주 큰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쥔다.”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할리우드 명배우 잭 니콜슨 역시 그 내면의 여정에 반했다. 멜로영화 ‘에브리씽 유브 갓’(2010, 제임스 L 브룩스 감독) 이후 연기 활동을 쉬고 있던 그가 ‘토니 에드만’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에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게 된 것. 딸 역은 코미디 배우 크리스틴 위그가 맡는다. 감독은 누가 될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아데 감독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이 독특한 매력으로 뭉친 영화를 할리우드가 어떻게 리메이크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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