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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만으로 뽑는 한양대 학종 실험 3년 해보니

중앙일보

입력

‘전교 5등이 떨어지는데 10등이 붙는 대입전형’, ‘복불복 전형’

수능,자소서,면접 없는 한양대 학종 #학종 출신 신입생, 학점,만족도 높아 #일각에선 '깜깜이 전형' 불만도

한양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학부모ㆍ입시전문가들의 평가다. 한양대는 2015학년도 대입부터 학종에서 학생부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학종의 필수요소로 여겨지는 자기소개서ㆍ교사추천서 등의 서류를 없앴고 면접도 치르지 않는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도 폐지했고 교과 내신등급도 산출하지 않는다. 오직 학생부에 적힌 내용만으로 정원의 35%에 달하는 1000여명을 뽑는다.

이런 방법으로 학종을 운영하는 곳은 3년째 한양대가 유일하다. 대부분 대학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치르고 일정 수준의 수능 등급을 합격 조건으로 내건다. 특히 면접이나 수능 등급은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때문에 한양대가 새 전형을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도 입시 업계에서는 “한양대 학종 입학생의 학력 수준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한양대의 2015~2016년 입학생 추적 조사 결과는 이러한 예상과 달랐다. 2년간 신입생 5735명의 성적을 분석해보니 학종(일반)으로 들어온 학생의 학점이 3.45점으로 논술(3.33점)이나 수능(정시ㆍ3.32점)으로 들어온 학생보다 높았다.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대학에 다니는 학생도 학종 출신이 더 많았다. 입학생 중 재학률이 학종은 84.4%로 높았지만 정시 입학생은 75.3%에 그쳤다. 대학에 대한 만족도도 학종 출신이 높았다. 5점 만점인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 학종 출신은 3.59점으로 정시(3.53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권경복 한양대 미디어전략센터장은 “수능이나 내신 성적에 맞춰 진학한 학생들과 달리 학종 입학생은 전공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학점도 좋다. 타 대학에 가기 위해 ‘반수’를 하거나 전공이 잘 맞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적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의 학종 개편에는 학종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점수화된 성적을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정재찬 한양대 입학처장은 “시험 점수가 더 높은 학생이 떨어지고 낮은 학생이 붙었다고 해서 잘못된 입시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에서 내신 성적으로 뽑고 있고, 정시에서는 수능으로 뽑고 있는데 학종에서도 성적을 반영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정 처장은 “4차 산업시대에도 대학이 공부 잘하는 학생만 뽑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학생부만으로도 도전정신과 인성 등 여러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양대는 학생부에 적힌 교내 활동과 교사의 관찰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의 전공 적합성과 잠재력을 평가한다. 여러 명의 입학사정관이 학생 각각을 평가해 종합하는 방식이다. 사정관끼리 의견이 엇갈리거나 학생부에 적힌 내용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면 12명의 사정관이 직접 전국 곳곳의 학교를 찾아간다. 2인 1조로 학교에 찾아가 담임이나 부장교사를 면담하고 검증 보고서를 작성한다. 검증 보고서가 작성되면 사정관들이 모여 끝장 토론을 거친 끝에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정 처장은 “여러 사람의 주관적 평가가 일치한다면 시험 점수보다 더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입시 부담이 없다는 점을 좋게 평가했다. 2015년 한양대 소프트웨어전공에 학종으로 입학한 김도현(21ㆍ여)씨는 “뭘로 뽑는건지 명확하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지만 다른 대학 입시와 달리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없어 사교육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입학한 다음 학종으로 들어온 친구들끼리도 어떻게 들어온 건지 궁금해했는데, 내신 4~5등급인 친구도 있고 저마다 좋아하는 것과 특기도 제각각이어서 하나의 기준으로만 줄세운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준이 불명확한 ‘깜깜이’ 입시라는 비판도 여전히 제기된다. 학부모 김모(46)씨는 “수시 지원 기회가 6번으로 제한돼있는데 합격 예측이 불가능한 대학에 지원하는 건 상당히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한 입시 전문가는 “대학의 제도 개편 취지는 좋지만 성적에 따른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우리 입시 풍조에서는 정착하기 쉽지 않다. 타 대학들이 한양대 방식을 따라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2015년 당시 전형 개편을 주도한 배영찬 한양대 교수(화학공학)는 “입학 가능성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제도는 결국 내신, 면접, 수능 등 중요하다는 요소 하나만 무한 경쟁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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