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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임금, 자원, 입지 세 박자 갖춰 … 열악한 인프라가 걸림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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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10면

[창간 10주년 기획]
아시아 마지막 기회의 땅 미얀마를 가다 <상>

1 올해 9월 양곤에 문을 여는 롯데호텔 [사진 롯데호텔]

1 올해 9월 양곤에 문을 여는 롯데호텔[사진 롯데호텔]

2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선 부처의 유품이 있는 불탑 ‘쉐다곤 파고다’가 정신적 지주 역할

2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선 부처의 유품이 있는 불탑 ‘쉐다곤 파고다’가 정신적 지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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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5일 오후 11시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미얀마 양곤국제공항. 2011년 이후 미얀마로 취항하는 국제 항공사가 네 배가량 증가하면서 지난해 3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입국 심사대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보다 입국 절차에 드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공항 입구엔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점인 KFC가 눈에 띄었다. 면세점엔 아르마니·코치 등 해외 브랜드 매장을 비롯해 화장품·주류 매장 등 50여 개 상점이 있다. 선원을 뽑기 위해 출장왔다는 박종준 SK해운 인사팀장은 “공항에 내렸을 때 예상과 달리 너무나 깨끗하고 규모도 커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민주화 후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유럽·베트남 등 투자 10년새 10배 #포스코대우, 가스전 개발로 대박 #한류 열풍에 화장품·음식도 인기 #전력난, 높은 임대료 등이 발목

#2. 지난 6일 양곤의 롯데호텔 공사 현장. 올 9월 개장을 앞두고 현장 직원들의 마무리 작업으로 분주하다. 연면적 10만4123㎡(약 3만 평) 공간에 5성급 호텔과 레지던스 호텔, 연회장 등을 갖춘 리조트가 들어선다. 2012년 포스코대우(옛 대우인터내셔널)가 40대 1 경쟁률을 뚫고 따낸 사업이다. 포스코건설이 짓고 롯데호텔이 운영을 맡았다. 호텔로 들어서자 양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야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말이면 호숫가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돗자리를 펴놓고 점심을 먹는 양곤 시민들로 가득하다. 심희승 롯데호텔 양곤 총지배인은 “롯데호텔은 미얀마 최초의 한국 호텔로 위치는 물론 시설, 서비스 면에서 양곤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며 “3~4년 새 미얀마를 찾는 외국인 투자자가 크게 늘고 있어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3 1800명 현지인이 일하는 태평양물산4 한국계 은행 처음으로 지점을 낸 신한은행

3 1800명 현지인이 일하는 태평양물산4 한국계 은행 처음으로 지점을 낸 신한은행

양곤 곳곳 호텔·쇼핑몰 공사 한창

아시아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꼽는 미얀마가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경제 중심지인 양곤은 곳곳에서 호텔·쇼핑몰 등 빌딩을 세우고 도로를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다. 특히 공항을 빠져나와 양곤 시내로 들어선 순간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경험한다.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 주행을 법으로 막았음에도 도로는 수많은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정체 구간마다 연녹색의 전통 자외선 차단제인 타나카를 얼굴에 바른 상인들이 음료수나 과자를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로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30만 대가 넘는 버스·승용차 등이 보급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은 7.3%(2015년 기준)다. 2010년 이전(4.7%)과 비교할 때 급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2011년 50년 가까운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경제개혁·개방에 나선 이후의 변화다. 미얀마는 1962년 네 윈의 군사 쿠데타 이전에는 연간 300만t 이상의 세계 1위 쌀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토지 등 핵심 자산을 국유화하면서 쌀 수출은 급감했고 경제도 가라앉았다. 사실상 첫 정치적 시험 무대는 2015년 총선이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승리한 후 지난해 3월 새 정부를 구성했다. 미국은 10월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졌던 모든 경제제재를 풀었다. 이로써 개발도상국에 적용하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 대상으로 다시 지정되면서 봉제의류 등 5000여 개 품목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정치 변화는 해외 투자를 통한 경제 재건으로 이어졌다. 해외 투자자에게 미얀마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지난 4년간 양곤에서 수출입은행 사무소를 맡았던 손승호 경협지원실장은 “한반도의 3배가 넘는 면적에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 약 5000만 명의 노동력, 거대한 소비 시장인 인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성장 잠재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창민 공공협력원장은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수준이 100달러로 저렴하고 젊은 인구(15~28세)가 1300만 명에 달해 노동집약적인 봉제산업이 발달했다”고 말했다. 미얀마 근로자의 임금은 중국(296달러)이나 태국(270달러)의 절반 이하다. 이에 따라 해외 투자자금이 몰리면서 지난해 외국인 투자액만 94억8100만 달러(약 11조원)로 10년 전과 비교해 10배 이상 불어났다.

한국 기업 중에선 2000년대 이전부터 진출한 업체들의 성과가 좋다. 대표적인 곳이 포스코대우다. 80년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시절부터 봉제·합판 공장 등을 운영하며 미얀마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97년엔 미얀마 정부가 먼저 사업을 제안해 가스전 탐사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로부터 7년 뒤 벵골만에서 3개의 가스전 발견에 성공했다. 원유준 포스코그룹 미얀마 대표법인장은 “한 차례 탐사에 실패했지만 재도전해 2013년부터 하루 약 5억 입방피트(원유 환산 시 약 9만 배럴) 규모의 가스를 생산해 중국(80%)과 미얀마(20%)에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포스코대우의 전체 영업이익은 3181억원, 이 가운데 미얀마 가스전에서 거둔 이익이 88%를 차지한다.

98년 진출한 태평양물산도 빼놓을 수 없다. 양곤 공항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투우나 지역에 공장을 지었다. 지난 6일 방문한 공장에서는 18개 봉제 라인을 따라 돌아가는 미싱 소리가 이어졌다. 하늘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재킷용 옷감을 자르거나 미싱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보상 태평양물산 양곤 법인장은 “약 1800명을 고용해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하는 재킷을 만든다”며 “앞으로 미얀마에 공장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베트남 공장보다 인건비가 40%가량 저렴한 데다 최근 미국으로의 무관세 수출길이 열리면서 미얀마 공장의 경쟁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뿐 아니라 유통업체들도 미얀마를 찾고 있다. 최근 양곤의 새로운 중심가로 떠오르는 곳이 세도나호텔 네거리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미얀마플라자다. 베트남에서 50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이곳에 들어서면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지난해 3월 한국계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은행지점 허가를 따낸 신한은행이다. 홍석우 신한은행 양곤 지점장은 “현지 은행은 아직까지 전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영업 분야를 확대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내 농기계 회사인 대동공업이 미얀마에 1억 달러어치를 수출할 수 있도록 보증하거나 미얀마 국채를 매입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틸라와 SEZ에 유지(油脂) 공장을 세운 CJ푸드는 가정용 식용유를 생산한다. [사진 CJ푸드]

틸라와 SEZ에 유지(油脂) 공장을 세운 CJ푸드는 가정용 식용유를 생산한다. [사진 CJ푸드]

전력 보급률 30%, 부동산 가격 치솟아

미얀마는 83년 북한이 전두환 대통령을 노리고 아웅산 폭탄테러를 저지르자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이후 한국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현지인 민민(35)은 “‘대장금’ ‘주몽’ 등 한국 드라마가 미얀마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 화장품이나 음식을 찾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주요 쇼핑몰 안에는 네이처리퍼블릭·더페이스샵 등 한국 화장품 브랜드도 쉽게 눈에 띈다. 한국 프랜차이즈 역시 한류 열풍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13호점까지 열며 미얀마의 대표 외식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닭요리 체인점인 유가네, 한식당 서라벌 등도 지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첨단기술을 갖춘 제조업체가 투자에 나서기에는 전력·물류·통신 등 열악한 인프라가 발목을 잡는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보급률이 30%에 불과할 정도로 전력난이 심각하다”며 “외국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디젤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이후 치솟은 부동산 가격도 걸림돌이다. 미얀마는 외국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이보상 법인장은 “한국인 주재원이 머무는 30평대 아파트 한 달 임대료가 3000달러 수준”이라며 “워낙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전기만 잘 들어와도 가격이 비싸다”고 말했다. 상점가 등 편의시설이 잘 꾸며진 샹그릴라?골든힐 레지던스는 한 달 숙박료가 5000달러에 이른다.

양곤(미얀마)=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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