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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희망" 세 채널서 동시 신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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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재승서기관이 납치 21개월만에 풀려났지만 석방이 있기까지의 구체적인 교섭 경위와 조건등은 국제인질테러사건에 대한 관례대로 외무부가 함구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실상을 알기 어렵다.
복잡한 국제관계의 역학이 작용할 수 있고 비합법성과 공개될 때의 위험 부담, 재발방지를 위한 고려 등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인질사건은 자세한 내막의 공개없이 단발성 해결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사건은 지난 86년 1월31일 상오8시30분 도서기관이 김규영행정관과 함께 승용차로 출근하다 서베이루트 현지대사관을 불과 25m 앞둔 커브길에서 녹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미리 잠복중인 무장괴한 4명에 의해 납치돼 종적이 묘연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정부는 사건발생후 이사건을▲정치적 이해관계보다 금전을 노린 단순 인질극▲정치척 목적에 의한 과격파의 소행▲뚜렷한 동기가 없는 무차별납치등의 가능성을 놓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도무지 단서를 잘을 수 없었다.
사건발생직후 「세상에서 억압받는 자들」(86·2·2)「녹색여단」(86·2·3)「전투혁명세포」(86·2·3) 등 해괴망측한 이름을 가진 단체들이 자기들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나섰고 레바논의 기독교소리방송은 헤즈볼라(신의 당)의 관련설을 보도하는가하면, 86년5월31일에는 「후세인」내무상이 북한의 사주에 의한 납치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측은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자 공개적으로 86년6월25일 레바논 현지TV망을 통해 영·불·아랍어로 「생사여부만이라도 알고싶다」는 도서기관가족의 애끊는 절규를 방영했지만 아무런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도서기관의 생존사실여부조차 확인되지않는 가운데 도서기관을 포함한 레바논 내 외국인인질의 일부 및 일괄석방설이 보도되거나 유포된 것은 이번을 빼고 지금까지 네번이었지만 모두 불발로 그쳤다.
지난 4월8일에는 기독교계 레바논 소리 방송이 도서기관이 2주일이내 4명의 베이루트교수와 함께 석방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고, 지난9월20일에는 레바논 주간지 아시 시라가 도서기관을 포함한 인질들이 단계적으로 석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의 돌파구가 엿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초순 베이루트의 한국대사관과 유럽 및 다른지역의 한 지점 등 세곳에서 조건을 제시하며 우리측과 접촉을 원하는 신호가 거의 동시에 잡힌 때였다. 마침 그때는 레바논내의 인질에 대한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레바논내 게릴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리아가 인질사건의 일괄 타결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 가운데 「아라파트」PLO 의장이 인질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우리측은 이 세 채널을 통해 도서기관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지문·자필서한등을 요구했고 교섭을 제의한 측은 똑같이 9월20일자 타임지를 들고 있는 도서기관의 사진과 자필 영문서한을 보내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사진은 합성된 것이 아닌것으로 판명됐으나 서한은 영문으로 되어있어 감정이 모호한 상태였다.
세 채널에서 한동안 교섭이 진행됐으나 한쪽은 엄청난 요구조건 때문에, 다른 한쪽은 지역적 위험성 때문에 교섭을 더 진행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채널에서 지난달27일까지 교섭을 완료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레바논의 LBC-TV가 도서기관의 석방을 보도한 날도 27일이어서 도서기관의 신병이 최초의 납치단체로부터 「나비·베리」휘하의 아말민병대로 옮겨진 것이 그날쯤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외무부로서는 벌써 그 며칠 전부터 도서기관이 어느 곳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파악하고 적극 교섭을 진행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다만 그의 안전과 교섭의 비밀유지를 위해 함구로만 일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LBC-TV의 보도가 있은 얼마후 도서기관이 석방됐으며 베이루트를 떠났다는 「나비·베리」법무상의 발표가 실은 한국정부의 요청이었다는 외신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외신은 도서기관의 레바논 출국에 필요한 한국정부의 여행관계서류 도착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그때 도서기관은 「나비·베리」휘하의 아말민병대 보호아래 베이루트에 있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외무부가 도서기관 석방교섭에 「급진전」을 보였다고 밝히면서 낙관한 것은 29일 상오1시 도서기관이 유럽 모공관의 우리외교관에게 직접전화를 걸어오고서부터다.
이에 앞서 28일 밤에는 그리스에 있던 전영수주레바논대리대사가 베이루트로 날아가 「나비·베리」측과 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30일과 31일에 걸친 마라톤교섭끝에 31일새벽 도서기관석방에 따른 필요한 절차등에 양측이 극적인 타결을 본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외무부와 정부고위층 주변에서는 도서기관의 구체적인 귀국일자에 관한 추측이 떠돌면서 외무부가 긴장을 늦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던 중 도서기관이 제네바에 도착, 우리공관의 보호아래 들어가자 외무부는 이를 공식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외신은 이번에도 도서기관의 몸값이 1백만달러니 하는 보도를 하고 있지만 외무부는 공식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납치단체의 명칭·성격등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도서기관 역시 아직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어 상당기간 베일에 싸여 있을 것으로 보이며 어떤 대목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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