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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은 곧 밝고 깨끗한 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신시 80년을 맞는 해. 육당 최남선이 1908년 이른바 신시의 효시라 할『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처음 발표한 11월1일이「시의 날」로 제정되어 이를 기리는 모임들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시인들은 물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함께 하는 시의 대축제, 전에 없던 이러한 호응은 무엇을 뜻하는가.
11월1일을「시의 날」로 선언하는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다. 우리는 시로써 저마다의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우리 겨레가 밝고 깨끗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그러한 시심을 끊임없이 일구어왔기 때문이다.>
틀림이 없는 이야기다. 우리 겨레는 남달리 시를 사랑해온 겨레였다. 그러한 시심의 바탕을 지니고 있었다. 글(시)을 하는 선비를 높이 쳤으며, 노동의 현장에도 언제나 시가 있었다. 이른바 노동요라 불리는 꾸밈없는 무형의 주명율을 통하여 시름을 풀고 거기서 일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사정은 어떠했는가. 한동안 시들을 읽지 않았고 시심의 자리가 비어 있었으며 그것은 시인들만의 몫이기도 했다. 시는 쓸쓸했다. 얼마전 어느 정치가가 나도 젊었을 때는 시를 읽었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떤 비아냥에 가까운 심정적 억양을 느꼈던 것도 사실 알고 보면 그에 대한 불신에 앞서 그것은 그만큼 시가 우리로부터 멀리 가 있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늘의 시는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를, 시심을 멀리했다는 책임은 모면되지 않는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보이는 공리성만을 쫓는데 급급했던 우리 모두가 문제였다. 그런 속에서 자폐증에 걸려 있던 시인들에게도 책임은 없지 않았다. 「시의 날」-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러한 뜨거운 호응은 <보이는 공리성>만을 추구하다보니 <보이지 않는 공리성>의 자리가 크게 비어있게 된 저마다의 갈증에 대한 또다른 욕구요, 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의 가치에 대한 일방적이며 획일적인 관념이다. 우리에겐 어떤 가치의 것도 숨게 유희적으로만 가지고 가려는 본능이 있다. 예술로서의 깊이와 긴장성, 그 밀핵적 요소도 외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온당하게 시심을 탈환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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