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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유청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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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며칠전 한 일간지의 독자난에는<좌경용공 단죄도 좀더 성숙해져야>라는 짤막한 투고가 실려 있었다. 미국유학생일 듯 싶은 이 투고자가 그 글에서 안타까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남용 또는 오용되어왔던<좌경용공>이란 단어가 공산권에서 민주화 주장이 나오고 대만에서는 중공방문을 허용하고 있는 이 시기에 이른바<성숙한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튀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의 시대착오적인 것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이제는 제발 꼭 써야 할 경우에만 사용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는 이 투고가 새삼 내 주목을 끈 것은 이 발언 자체가 새로와서 이기보다는 이념문제에 관한 우리 기성세대의 완고성을 거듭 우려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때문이다. 나는 얼마전, 그러니까 단호한 반공주의로<좌경용공>의 흐름에 강경히 대처하겠다는 50년대적 인사들의 모임이 이루어졌고 이 움직임에 대한 신문들의 회의적인 비판기사를 볼 즈음 친구 변호사로부터 공안담당자들의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정한 민주주의 실천도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인 분석 예를 통해 들은 바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많은 이념도서들이 해금된 것에 다행스러워 하면서도 그것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데에, 그리고 이른바 문명사회에 여전히<금서>체계가 부끄럽게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못 못마땅하게 생각해오던 참이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자본주의체제와 시장 교환 구조가 인간을 사물화하는 반인간주의적 가치체계를 숨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가 한가지 그 장점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자유로이 쏟아져 나온 상품들을 소비자가 마음대로 골라 구입할 수 있다는 다원적 가치관과 자유로운 선택권을 그것이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극히 역설적인 것은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한 시장의 원칙이 허용되지 않고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집단들이 형성한 일종의 카르텔에 의해 오직 한가지 흐름의 그것만이 주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그간의 사정이 6·25의 체험과 남북대치의 상황에 원인을 두고 있으며 그 이해될 수 있는 기성세대의 의식이 젊은 세대의 이념 제기와 진보주의적 사고를 불안하게 밖에 바라볼 수가 없으리란 점은 납득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한세대 전의 구태의연한 사고와 방식으로 대처하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흘렀고 사회가 변했으며 우리의 사고도 발전해 있다는 점은 환기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우리 인구의 반 이상이 6·25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며 3분의 1 이상이 변혁의 잠재력을 가진 진보적 계층으로 조직화되었으며,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 보수적 우파 노선만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선택지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의 능력이 축적되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6·25가 의식의 전면에서 후면으로 후퇴했으며 그 반공 이데올로기가 체험적 진실에서 선험적 편견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냉전 콤플렉스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의식지향의 다양성으로 진전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변화는 운동권 학생들의 급진주의적 발언으로, 이념적인 사회과학 도서들의 활발한 유통으로, 그리고 지난여름의 노사쟁의 사태에서 나타난 노동자들의 요구로 그 실제적 표현을 발견하게 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광범한 의식속에 그것이 깊이 파급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공업화로의 진행이 더욱 활발해지고 인식의 고착성에 반발하는 새로운 세대의 인구가 더 커질 것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식의 변화를 도외시해서는 안될 지경에 곧 이를 것이다. 당장, 현재 보수정당간의 치졸한 정치행태에 환멸과 반발을 가질 집단들이, 그들이 기성세대든 중산층이든 새로운 이념정당에의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을 갖고 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 변화하는 체제의식에 정당하고 긍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진보주의적 사상과 이상을 불온시하는 일을 고쳐야 하고, 혹은 적어도 힘의 논리로 강제 억압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하고, 이념의 자유시장화를 통해 선택과 지향의 자연스런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할 것이다. 그것은 우선 우리의 잘못 수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체제 폐해를 수정하게 만들 것이고, 편향성으로 시달려온 우리의 의식풍토에 균형찾기를 실현할 것이며 그래서 다원적인 민주주의가치 체계를 현실화하면서 우파의 보수적 이데올로기 자체를 논리화시켜줄 것이고 남북관계에서든 올림픽을 앞둔 국제관계에서든 우리의 입장을 강화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의 열린 미래를 향한 튼튼한 탄력성과 다이내믹한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줄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기성세대의 고정관념과 함께 사상이든 도서든 이념적 금기를 허물어뜨리고 색안경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공안의식체계의 허구를 깨뜨려야 하며 진보주의의 정치적 표출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적어도 나같은 기성세대의 보수주의적 시선으로 보더라도 50년대적 대응방식은 두팔을 묶은 상대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과 같은 불공정한 폭력이며 그래서 그 시합에 이긴다 하더라도 그 승자는 불명예스런 가해자일뿐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경제적 자유시장체제를 옹호한다면서 사상적 자유경쟁 논리를 배반한다는 것이 지하경제처럼 이념의 지하조직화를 재촉하여 그것의 폭력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경고만일 수가 없다.
진실은 불온한 것 자체에 있다기보다 불온하게 보는 그 시선에 불온성이 있다는 것, 위험성은 미리 위험하다고 판결하는 사고의 그 고착성과 흑백 논리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같은 진실을 우리는 지금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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