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서 온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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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정치에 매우 민감하고 특히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2O대들은 탈정치·선거무관심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지방의회선거를 아예 기피해 행정당국이 골머리를 앓고있는 정도다.
한국학생들은 2명 이상이 모이면 정치를 화제로 삼지만 일본의 경우는 주식투자나 퍼스널컴퓨터 또는 음악에 관한 정보교환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며 정치 이야기를 불쑥 꺼내면 머리 아파한다.
오랫동안 물질적 생활의 풍요와 안정을 누려온 일본젊은이들이 여가를 즐기는데 전념하는 나머지 선거에는 아예 담을 쌓는 경향이 뚜렷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의 삼정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 짜내기 경쟁마저 벌이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지난주에 선을 보인 야마구치 (산구)현의 디스코풍「선거곡」이다.
대학캠퍼스나 시청앞 광장 또는 역부근에까지 밴드를 동원해 경쾌한 리듬의 선거곡을 연주해 20대를 끌어 모은다. 여기서 연주되는 선거곡의 가사는 매우 계몽적이다.
『의리도 인정도 연고도, 돈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내일의 정치를 이 한표에 거는 기분으로 투표소로 가자. 자-선거다. 아∼아∼선거다. 투표일을 잊지 말자.』
젊은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선거곡을 부르면 오가는 2O대들이 가설무대로 뛰어나가 디스코춤을 춘다.
야마구치현 당국은 2O대 유권자들에게 보다 친근감을 주기 위해 이 가사를 주민들로부터 현상 모집했으며 작곡은 야마구치 시청직원이, 합창 및 연주도 모두 주민들이 맡아서 하도록 기획해 인기를 끌고있다. 처음에는 이 가사에 민요풍의 곡을 붙일 생각이었으나 2O대들이 아예 외면할까봐 바꿨다.
인구 1백60만명의 야마구치현이 별난 선거계몽에 나선 것은 작년 7월에 실시된 중의원·삼의원의원 동시선거결과 2O대의 기권율이 전체평균(9.7%)의 3배를 훨씬 넘는 37.1%에 이른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20대들의 선거기권 이유는「귀찮아서」「정치에 관심이 없어서」「다른 약속이 있어서」가 대부분이었다.
이현의 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인「와타야」(면옥자이)씨는 『젊은이들의 선거의식이 너무 희박해 지방행정이 맥이 풀리고 있다. 행정이 도전적 정신을 이어 받으려면 젊은이들의 삼정의식이 필요하다. 우선 투표율을 높이는 가장 알맞은 방법은 그들의 생활리듬에 맞는 디스코풍의 선거곡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노래는 각 마을에 설치된 공공 확성기를 통해 방송되기도 해 중·고등학생들도 선거를 생활의 일부로 느끼도록 하고 있으며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에도 좋은 반응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 20대들의 정치 무관심은 고도성장의 결과로 온 물질적 자기만족의 부산물이다. 전후 학생운동은학원부흥투쟁으로 시작해서 정치 투쟁으로 전환해 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전학연)을 결성, 신좌익으로 등장했으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60년대 미일 안보투쟁을 정점으로 그 세력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특히 70년대 이후에는「미시마·유키오」(삼도유기부·70년 할복자살한 작가)사건을 계기로 기성우익에 연계되는 활동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정치·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나 현상타파의 뜨거운 분위기는 경제발전·사회안정과 함께 점차 없어졌다.
질서와 룰에 순종하는 현실주의·보수주의화하면서 일본의 젊은 세대는 사회운동 또는 정치운동을 담당하는 층으로서의 힘을 상실해버렸다. 일부 기성세대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본학생운동의 선구성논이 이미 퇴색했으나 선거에 적극 참여해 의사를 표시하는 의기발랄한 20대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정치인들은 20대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에어로빅 댄서들을 동원해야 할만큼 선거무관심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지방자치법이 시행된 지 만4O년을 맞고있는 일본의 각 현은 시·정·촌지역의 활기를 유지하면서 국제성을 가미하는「지방시대」를 구가하기 위해 20대의 삼정의식을 고취시켜야하는 절실한 문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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