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규제 찾아내도 정부 부처 이해 걸려 못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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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달 18일 "300여 개 자본시장 관련 규제의 3분의 1 이상을 철폐하거나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같은달 6일 "창업 관련 절차를 개선하고 법인 설립부터 공장 설립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틈만 나면 규제 완화를 통한 서비스업 발전을 강조해 왔다.

재경부는 여기에 맞춰 올 초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 계획에서 지난해 불합리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개선했고, 27개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제를 당하는 쪽인 민간의 시각은 다르다. 재경부의 의뢰로 만들어진 무역협회 '경제 암행어사'가 기업 현장을 5개월간 누비며 발굴해 정리한 '경제 암행어사(규제현장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정부의 불합리한 백화점식 규제가 곳곳에 여전히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보여준다. <본지 2월 6일자 1면>

정부는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반응이 이처럼 차가운 이유는 무엇일까. 무역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 완화의 의지를 보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실천"이라고 지적했다.

재경부 등에서는 규제 개혁을 추진하지만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조율이 어렵다. 공무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각종 규제를 손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큰 원인이다. 여기에 수도권 집중 억제나 의료기관의 공익성 등 명분에 치우진 정책 때문에 얽혀 있는 규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정부가 서비스업 육성이란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규제가 얽혀 있는 한 발전은 어렵다"며 "명분보다는 실리를 찾는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꿈쩍 않는 규제=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수도권에는 공장총량 규제가 적용된다. 제조시설.사무실.창고의 면적 등을 합해 건축물의 바닥면적이 200㎡ 이상인 공장은 이 규제에 묶여 사실상 수도권에서 신.증설이 제한된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 억제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배수시설.폐기물 처리시설 등 공장 부대시설의 증설도 허용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인천시 I사는 2002년 생산량이 늘면서 폐기물 처리시설 등의 확장이 필요해 지방환경청 등으로부터 증설 허가를 받았지만 공장총량제 때문에 설치하지 못했다. 대신 불법 임시건물을 설치, 폐기물 처리시설을 들여놓았다. 결국 이 회사는 경기가 좋아져도 생산을 더 늘릴 수 없고, 생산을 늘리려면 법을 어겨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무역협회는 이런 문제점을 찾아 경제 암행어사 보고서를 통해 규제 개혁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경부의 입장은 '수용거부'였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지방균형발전과 연계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문제지 당장 풀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해갈등 풀 지도력 필요=영리 의료법인 금지나 보육료 상한선 제도도 공익성과 정부 내 '부처 이기주의' 등에 얽매여 풀지 못하는 규제다.

국내에서 의료와 보육서비스는 산업이 아니라 공공재로만 여겨진다. 여기에 치료비와 보육료 등을 계속 규제하려는 공무원들 때문에 고급 서비스 산업으로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재경부 등 일부 부처에서는 이제 의료와 보육도 산업으로 보고 규제를 풀어야만 고용을 늘리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고급 종합병원 한 개만 더 생겨도 의사.간호사는 물론 의료기사.임상병리사.영양사.청소원 등 수백 명을 고용할 수 있다. 병원의 고용 창출 능력은 제조업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런 이해 갈등을 정부 안에서 풀지 못한다는 점이다. 첨예하게 맞서는 부처 간 이해 갈등 때문에 핵심 규제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 것이다.

김종윤.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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