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 비밀공작 원조, 일본 나카노학교…북이 독자적 발전시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공작기관 소속으로 추정되는 김정남 암살 용의자들.

북한 공작기관 소속으로 추정되는 김정남 암살 용의자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국제공항, 고용된 외국인 여성들, 맨손을 이용한 맹독성 신경가스(VX) 공격, 범행 직후 유유히 출국한 공작원들….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법으로 김정남 암살에 성공한 북한의 비밀공작에 전 세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공작기법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비밀정보기관 출신들로부터 전수됐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10일 온라인판에서 “북한 공작기관의 모태는 옛 일본군 비밀요원 양성기관인 육군 나카노(中野)학교”라고 전했다.

2차 대전 앞두고 엘리트 교육 #김정일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金도 나카노 알아…자주 언급" #이후락이 졸업생이라는 증언도 # #

기사에 따르면 외무성 정보분석관 출신 작가인 사토 마사루(佐藤優)는 “나카노학교에서 연구된 공작기법을 북한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현재의 북한 비밀공작”이라고 말했다.
패전 이후 북한에 남은 나카노학교 출신자들이 북한 공작기관의 창설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공작원 육성법이나 활동방식 등이 나카노학교의 교육 내용과 판박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공작기관들이 100달러짜리 수퍼노트 등 위조지폐를 찍는 것도 사실 일본식 기법이다.
실제 일본군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에 위폐를 대량유통시켜 경제혼란을 도모했다.

1966년 개봉한 일본 영화 '육군 나카노학교' 포스터.

1966년 개봉한 일본 영화 '육군 나카노학교' 포스터.

기사에선 1960년대 나온 일본영화 ‘육군 나카노학교’ 시리즈가 북한 공작원 양성에 사용됐다는 얘기도 소개됐다.
북한 노동당 작전부 소속 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93년 귀순한 안명진 씨는 2005년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영화를 교재로 썼다. 몇 번이나 반복해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에 따르면 영화광 김정일도 이 영화를 통해 나카노학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후지모토는 저서에서 “김정일과 함께 사격을 하다가 내가 명중률이 높자 ‘후지모토는 나카노 급이야!’라고 자주 말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중앙포토]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중앙포토]

나카노학교는 2차 대전을 1년 앞둔 1938년 창설됐다.
당시 명칭은 ‘후방근무요원 양성소’였다.
이 기관의 존재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군내에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이듬해인 39년 일본군은 도쿄(東京) 교외의 나카노로 교사를 옮기고 부대명도 성격을 유추할 수 없게 나카노학교로 바꿨다.

나카노학교는 도쿄제대 출신 등 주로 엘리트들을 선발해 외국어와 첩보기술을 가르쳤다.
배출된 공작관들은 홍콩·상하이(上海)·만주 등을 무대로 첩보수집은 물론 각종 비밀공작을 수행했다.
‘동양의 마타하리’로 불리는 청 황족 가와시마 요시코(川島芳子)를 관동군 정보원으로 포섭했던 다나카 류키치(田中隆吉)는 나카노학교장을 지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졸업생은 2500여 명에 달했다.

1974년 필리핀 루방 섬 정글에서 발견된 나카노학교 출신의 일본군 정보장교 오노다 히로 소위. [중앙포토]

1974년 필리핀 루방 섬 정글에서 발견된 나카노학교 출신의 일본군 정보장교 오노다 히로 소위. [중앙포토]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필리핀 루방 섬 정글에 숨어있다 전후 29년만에 발견된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소위는 나카노학교 출신 정보장교였다. 

발견 당시 오노다 소위는 일본으로 귀환하기 위해 특이한 조건을 제시했다. 직속 상관이 와서 항복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수소문 끝에 서점을 운영하던 상관 1명을 찾았고, 그를 루방 섬으로 보내 오노다에게 투항할 것을 명령했다.

오노다는 필리핀 대통령에게 항복 의식을 치른 뒤에야 일본으로 돌아왔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도요게이자이의 기사와 관련, “일본군 정보장교로 복무하다 해방을 맞은 나카노학교 출신들이 남북한의 정보기관 창설에 가담했을 수 있다”면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도 나카노 출신”이라고 말했다.
군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과거 정보학교에서도 나카노학교에 대해 가르쳤다”면서 “특히 정보사령부 예하 특수작전여단에선 나카노학교에 대한 분석과 토의를 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 공작기관들도 비밀공작의 전설과 같은 나카노학교에 대해 분석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선 “나카노학교가 북한 공작기관의 모태”라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고 기사는 소개했다.
공안조사청 간부 출신인 스가누마 미츠히로(菅沼光弘)는 그같은 주장에 대해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정보 당국자들도 북한 공작기관은 기본적으로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봤다.
한 전직 당국자는 “암살 수법을 포함해 북한의 비밀공작은 과거 KGB의 행태와 유사하다”면서 “주로 돈을 써서 공작했던 서방 정보기관들과 달리 KGB와 북한 공작기관은 미인계를 잘 쓴다는 공통점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