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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4기 해피엔딩 꿈꾸는 대한항공 기장 한선수

중앙일보

입력

한선수. 용인=신인섭 기자

한선수. 용인=신인섭 기자

프로배구 남자부 7개 구단 중 가장 한(恨) 많은 팀을 꼽으라면 아마도 대한항공 점보스일 것이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챔피언 결정전에 세 차례 올라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실업배구 시절을 포함하면 1986년 재창단한 이후 30년간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그런 대한항공에게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대한항공은 7일 삼성화재를 꺾고 6년 만에 정규리그 정상에 서면서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에 직행했다. 대한항공의 고공비행을 이끈 파일럿이라면 역시 상대의 허를 찌르는 토스로 공격수들을 이끈 세터 한선수(32)다.

대한항공은 2010년대 들어 항상 우승후보로 꼽혔다. 세터 한선수 외에도 김학민·신영수·곽승석·정지석 등 전현 국가대표 날개공격수를 4명이나 보유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결과는 늘 기대에 못 미쳤다. 2010~11시즌부터 세 시즌 내리 챔프전에 나섰지만 삼성화재를 넘지 못했다. 최근 세 시즌은 3-4-4위에 그쳤다. '대한항공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주장 한선수는 “우승후보란 말을 많이 들었지만 늘 결과가 좋지 않아 선수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올해는 일부러 우승이란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했다. 우리끼리도 ‘내려놓자’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한선수는 "아무래도 3번의 준우승 중에선 첫 해가 가장 아쉽다. 1위를 했는데 체력 관리를 잘 못했다. 이번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선수. 용인=신인섭 기자

한선수. 용인=신인섭 기자

한선수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했다. 이 기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대한항공은 한선수의 복귀가 더없이 반가웠다. 하지만 코트로 돌아온 한선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과거에 수술을 받았던 오른쪽 어깨가 좋지 않았고, 긴 공백기 탓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올 시즌은 지난해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렇게 정규리그 전 경기를 소화했다. 한선수는 "어깨 통증은 계속 있기 때문에 관리에 신경쓰고 있다. 감독님도 배려해준다.

한선수는 ‘고집쟁이’다. 자신의 토스가 먹히지 않으면 같은 선수에게 두 번 세 번 토스를 올린다. 공격수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다. 팬들은 독단적인 플레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유가 있다. 지난 시즌 김종민 감독이 사퇴한 뒤에는 '한감독'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한선수는 “고집이 센 건 사실이지만 막무가내는 아니다. 세터는 공격수를 살려야 한다. 코트 안에서 뛰는 건 결국 선수이기 때문이다”고 항변했다. 올 시즌 직전 부임한 박기원 감독도 비슷한 생각이다. 박 감독은 “한선수는 국내 최고세터다. 전술적인 대화는 경기 전에 이미 다 끝낸다. 경기 중 상황 판단은 세터의 몫”이라고 거들었다. 한선수는 "네 명의 레프트가 좋아하는 공이 다르다. 그래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괜찮다. 체력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선수. 용인=신인섭 기자

한선수. 용인=신인섭 기자

한선수는 부천 소사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세터가 됐다. 그전까진 레프트였지만 한 해 위 선배였던 이두언(현 OK저축은행 전력분석관)이 졸업하면서 세터를 맡게 됐다. 그렇게 20년을 뛰었고, 이젠 당당히 V리그 최고 연봉(5억원)을 받는 세터가 됐다. "창단 팀이라 세터를 볼 사람이 없어 하게 됐고, 중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세터가 됐다. 한때는 '왜 내가 세터를 했을까'란 후회를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세터는 정말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안 좋았던 일을 빨리 잊는 내 성격과도 잘 맞는다."

대한항공은 박기원 감독이 부임한 뒤 합숙 시스템을 싹 바꿨다. 평소엔 출퇴근하고, 경기 하루 전에만 숙소에 들어온다. 박기원 감독은 "다들 알아서 잘 쉬고 온다. 성적이 증명하지 않느냐"고 했다. 한선수는 "우리 나라만 숙소에서 합숙을 한다. 외국인선수들은 항상 의아해한다. 개인적으론 감독님 생각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숙소에 있으면 오로지 배구 밖에 할 수 없다.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게 배구에 집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복무 시절엔 살림솜씨가 늘었다고 했던 그는 "예전엔 주말에 아내 대신 요리도 했는데 요즘은 너무 힘들어서 못 한다. 그래도 아내가 배려해준다"고 웃었다. 평소 기사나 댓글을 보지 않는 한선수에게 브리핑을 해주는 것도 아내 몫이다. 한선수는 "프로선수는 보이는 일이니까 비난과 칭찬 모두 받을 수 밖에 없다. 괜찮다"고 했다.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전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고 기뻐하는 대한항공 선수들. [사진 한국배구연맹]

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전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고 기뻐하는 대한항공 선수들. [사진 한국배구연맹]

2007년 대한항공에 입단했으니 벌써 프로 10년차. 다시 찾아온 첫 우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선수는 “우승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정규리그에 해왔던 것처럼 같은 마음가짐으로 챔프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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