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7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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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3일 하오 1시50분쯤 서울 신문로 구 서울고 앞 인도.
초겨울 날씨 속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신사들과 20대 전투경찰이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벌인다.
「권력자는 공직보호, 공직자는 애국애족」이라고 쓴 어깨띠와 머리띠를 두른 40, 50대 신사들은 80년 이른바 「숙정」으로 해직된 공직자들. 『복직 복권』 『명예회복』 등 구호를 외치며 저항했으나 억센 전경들의 손에 팔·다리를 잡힌 채 미리 준비해둔 경찰수송차량에 차례로 실려지고 만다.
경찰은 이날 하오 2시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80년 해직공직자 복권투쟁 전국결의대회」 원천봉쇄에 나서 인도에 모인 5백여명을 강제 해산 중.
해직공직자들은 경찰의 연행이 시작되자 이중 50여명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연좌농성을 시도했다. 그러나 곧 전경들과 몸싸움 끝에 맥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해직공직자들 중에는 전직 경찰관의 모임인 「경찰복권투정위원회」 회원 20여명도 눈에 띄었다.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시위를 벌이려 했으나 전경들에 의해 연행되거나 밀려났다.
전경들을 지휘하던 한 경찰간부는 연행되는 한 전직경찰관을 바라보며 『저기 내 친구도 있네』라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끝내 대회장으로 정한 옛 서울고 운동장에 들어가지 못한 해직자들은 하오 2시30분 길 건너편 다방으로 3백여명이 옮겨가 결의문 등을 낭독한 뒤 하오 3시쯤 자진 해산했다.
『억울하게 해직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는데 평화로운 집회마저 못하게 하면 7년간 품어온 한을 어디 가서 풀어야 합니까.』
빼앗긴 7년 세월에 머리가 그만 허옇게 센 50대 해직공직자의 독백이 귓전을 맴돌았다. <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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