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에 맞서서는 부동산 못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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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청와대 부동산 정책토론회에서 재건축 제도를 실체적.절차적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개발부담금제도를 도입한다든가, 재건축 내구연한과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건축 승인 권한 환수 문제까지 도마에 올랐다고 한다.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게 만든다"던 8.31부동산 대책이 벌써 약발을 다한 모양이다.

그동안 정부는 "투기는 끝났다"고 여러 차례 장담했다. 주택 보유와 거래만 억제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수요는 여전한데 세금과 각종 규제로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오히려 집값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의 내성만 키운 꼴이 됐다.

새로운 개발부담금제는 재건축 이익의 환수를 의미한다.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극약처방까지 꺼내든 정부의 의지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의지와 오기는 구분해야 한다. 시장과 맞서려는 오기 때문에 부동산 정책은 누더기가 된 지 오래다. 세금과 규제는 갈수록 강화됐지만, 그러고도 투기와의 전쟁에선 연거푸 패배했다.

정부는 과거 실패 경험부터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장에 맞서려는 기본 인식이 문제다. 규제 일변도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면 양질의 주택 공급을 위축시켜 더 큰 시장 불안을 야기하기 십상이다. 차라리 수요가 몰리는 곳에는 과감히 규제를 푸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중장기 주택수요까지 미리 예측해 재건축과 고급 신도시 개발로 충분한 물량을 공급해야만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래야 투기가 발붙일 수 없다.

매번 대통령이 부동산 대책을 주도하는 것도 어색하다. 그러다가 실패로 드러나면 "야당 탓, 언론 탓"으로 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히려 실무자 차원의 정확한 실태 파악과 차분한 대응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정치 구호가 난무하는 곳에서 집값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