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세, 도입해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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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18면

신민영의 거시경제 읽기

일러스트 강일구

일러스트 강일구

인간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되더니 어느새 로봇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빌 게이츠가 로봇세를 제안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아직은 로봇세의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로봇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로봇을 소유한 사람에게 매겨지는 세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로봇을 소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해 로봇의 한계수익을 낮춤으로써 도입을 늦추자는 이야기다. 이로써 일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그 재원으로 노동자를 재교육하거나 로봇 대체가 어려운 보건이나 교육 등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거둔 세금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생산성 증가 이끌 혁신 저해하고 #과세 대상·규모 정하기도 어려워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될 우려

기술발전 따른 일자리 감소의 대안

로봇세가 주목받는 것은 전 세계적인 경기부진과 이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관계 있다. 가뜩이나 각국의 고용사정이 어려운데 공장자동화와 로봇으로 인해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슈가 되고 있는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은 자유무역 등 세계화로 인해 중국과 같은 제조 강국에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한다. 이와 달리 로봇세는 일자리 부족의 근본원인이 기술발달과 자동화 등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에 기반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가 세계화에 따른 감소의 3~4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틀에서 볼 때 로봇세가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봇세를 도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로봇세가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경제의 생산성 증가속도가 더뎌지면서 경제성장을 제약하고 있다. 인터넷 같은 새로운 혁신의 등장이 미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로봇을 더욱 늘려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로봇세 도입이 혁신을 저해하는 부정적 효과가 일자리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압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로봇세 도입이 석탄 발전소에 과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도 있지만 석탄은 천연가스나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괜찮은 대체수단이 있고, 공해 감소라는 경제 외적인 효과가 뚜렷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자동화 기계와 로봇의 구분 쉽지 않아

둘째, 위와 관련된 논의로 생산수단인 로봇에 과세할 경우 혁신이 방해될뿐 아니라 가격 왜곡으로 인한 사중손실(dead weight loss)이 생겨 사회후생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로봇을 포함한 자동화 장치를 도입해 생산성을 최대한 올리고 나서 사후적으로 복지제도 등을 통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더 현실적인 문제로써 어떤 로봇 혹은 자동화기계에 대해 얼마만큼의 세금을 거둬들일 것인가의 문제이다. 감지(sense)·사고(think)·실행(act)의 3요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계라면 로봇으로 분류되지만 명확한 정의는 전문가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공장자동화 관련 기계 가운데 어디까지가 자동화 기계이고 어디서부터 로봇인지가 분명치 않다. 아울러 협업 로봇처럼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성격이 있을 때에도 세금을 매기는 것이 정당하지 않을 수 있고,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정도를 측정하기가 어려워 과세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도 로봇세가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따지고 보면 로봇이 늘어난다는 것은 투자 증가를 의미한다. 보통 투자는 지원 대상이지 과세대상이 아니다. 또한 로봇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는 로봇에 대한 보상, 즉 자본의 수익률 역시 낮아질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에 대한 소득인 임금이 늘어나지 않고 노동소득분배율이 전세계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근본적으로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소개한 몇몇 연구에 따르면 지난 수십년간 전체 생산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분배되는 몫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로봇을 포함한 자본에 귀속되는 소득 비중이 더 빨리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과 자본에 대한 보상이 줄어들고 네트워크 효과나 우월한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시장지배력이 있는 소수 수퍼스타 기업들의 이익만 늘어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계와 인간 모두 ‘루저’가 돼가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혁신을 저해하고 사회적 손실을 낳는데다 효과적으로 과세하기도 어렵고, 장기적으로도 로봇 역시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로봇세가 자칫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 될 수도 있다. 로봇세가 폭넓은 공감을 얻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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