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연구, 단숨에 끌어올릴 '대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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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청나라 학자 옹방강이 조선에서 전해받은 금석문 내용을 직접 기술한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환영할 일이다. 남은 건 추사에 대한 연구영역을 넓히는 것이다."(최완수 서울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감동이다. 2002년 냈던 '완당평전'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유홍준 문화재청장)

조선 후기의 대학자였던 추사 김정희(1786 ~1856)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경기도 과천시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추사의 친필 20여 점과 당대의 문화지도를 보여주는 유물 2750여 점을 공개했다. 추사 연구의 선구자였던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1879~1948)가 평생 모은 자료를 그의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直.94)가 한국에 기증해온 것이다.

◆ 재조명 활발해질 거목 김정희=이번 기증품은 추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문화적 사건'으로 주목된다. 기증 규모가 방대한 것은 둘째치고, 그간 '원전(原典)' 부족으로 한계가 있었던 추사 연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후지쓰카 지카시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중국철학을 전공했던 그는 1926년 경성제대(서울대 전신) 중국철학 교수로 한국에 온 후 서울 인사동과 중국 베이징의 고서점을 훑으며 19세기 조선과 청나라 학자들에 관련된 자료를 수만 점 수집했다. 그의 아들이자 역시 동양철학자인 아키나오가 선친의 박사논문을 엮어 75년 발간한 '청조문화 동전의 연구'는 추사 연구의 '출발선' 으로 인정받고 있다.

1810년 추사가 중국 방문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할 때 청나라 학자들이 추사를 위해 차린 송별연 모습이 담긴 '증추사동귀시도임모(贈秋史東歸詩圖臨摹)'.

추사가 친동생들에게 쓴 편지인 '두 아우에게(奇兩弟帖)'.

새로 공개된 추사의 친필 20여 점도 숫자로 평가할 게 아니다. 추사연구회 김영복 운영위원은 추사가 그의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낸 편지 '우선에게(奇藕船)'와 두 아우에게 보낸 13통의 편지 '두 아우에게(奇兩弟帖)'는 각각 추사의 글씨가 완숙한 경지에 들어간 모습과 아직 여물기 직전의 형태를 또렷하게 보여준다"고 평했다.

◆ 조선 후기의 문화적 자신감=서울대 정옥자 교수는 "추사는 모든 분야에서 '올 에이(all A)'를 받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문학.역사.철학.시.그림 등에서 모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24세에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찾았던 추사는 이후 중국 석학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이른바 '국제화된 공부'에 매진했다.

유품들은 당대의 지적 풍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추사의 중국인 스승이자 경학가인 옹방강(翁方綱)이 조선의 학자에게 전해 받은 금석문 내용을 직접 필사한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추사의 또 다른 중국인 스승인 완원(阮元)이 청나라 고증학의 정수를 방대하게 정리해 추사에게 건넨 '황청경해'(黃淸經解), 추사의 친구인 조인영이 청나라 학자 유희해(劉喜海)에게 조선의 금속 탁본 97건을 적어 보낸 '해동금석존고'(海東金石存攷) 등 소중한 자료가 다수 포함됐다.

유홍준 청장은 "한.중의 학문 교류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깊고 폭넓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문제는 앞으로의 활용 방안=기증된 유물의 내용과 가치를 정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워낙 종수가 많고, 그간 문건으로만 발표됐을 뿐 실물이 공개되지 않은 게 적잖기 때문이다. 과천시는 현재 건립 중인 종합문화회관 안에 후지쓰카 자료관을 설치할 계획이다. 전시관이 완성되면 기증 물품의 번역.연구에 착수한다.

게다가 올해는 추사 탄생 220주년, 서거 150주년이 되는 해. 국립중앙박물관.예술의전당 등에서 다양한 전시를 준비 중이다. 과천시도 올 11월에 추사를 돌아보는 국제학술대회에서 이번 기증품에 대한 연구결과를 일부 발표할 예정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은 "이번에 자료가 대규모로 나온 만큼 추사 연구 또한 각론 차원으로 세분화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2월 3일자 21면 '돌아온 추사 김정희' 기사에서 추사가 보낸 편지 제목 '우선에게(奇藕船)'와 '두 아우에게(奇兩弟帖)'의 한자 표기가 틀렸습니다. '寄藕船'과 '寄兩弟帖'으로 바로잡습니다. 한자 '기(寄)'는 사람 앞에 쓰여 '편지를 부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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