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한·중 '기력 충돌' … 누가 더 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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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은 소수 정예의 힘으로 중국과 일본을 꺾고 세계를 지배해 왔다.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이 그 중심 축이었다. 이제 50대의 조 9단은 퇴조의 기색이 뚜렷하다. 이창호 9단도 과거처럼 무적은 아니다. 반면 중국은 많이 성장했다. 이리하여 2006년은 한국의 15년 독주가 끝나고 한.중 대격돌이 시작되는 원년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한.중 양측의 총전력은 누가 우세할까.

총전력은 가늠하기 힘든 것임에도 목진석 9단 등 중국통들은 '중국 우세'를 단언한다. 이창호 9단이 무적일 때도 총 전력에서 중국은 막상막하였다는 것이다. 30-50명 정도가 맞설 경우도 역시 중국 우세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부는 역시 더 좁은 곳에서 결정난다. 그래서 양측의 현역 강자를 17명씩 뽑아봤다.

▶한국(나이 순)=조훈현(53) 유창혁(40) 이창호(31) 안조영(27) 목진석(26) 조한승(24) 이세돌(23) 박정상(22) 김주호(22) 최철한(21) 박영훈(21) 원성진(21) 송태곤(20) 윤준상(19) 이영구(19) 고근태(19) 강동윤(17) 김지석(17)

▶중국(나이 순)=위빈(兪斌.39) 저우허양(周鶴洋.30) 창하오(常昊.30) 뤄시허(羅洗河.29) 왕레이(王磊.29) 딩웨이(丁偉.27) 추쥔(邱峻.24) 쿵제(孔杰.24) 후야오위(胡耀宇) 구리(古力.23) 왕시(王檄.22) 셰허(謝赫.22) 류싱(劉星.22) 박문요(18) 천야오예(陳耀燁.17) 리저(李哲.17) 구링이(高靈益.15)

한국 측 중원의 사령관은 역시 이창호 9단이다. 비슷한 나이의 중국 기사 중 이창호에게 필적할 만한 인물은 없다는 점에서 이 9단의 활약이 길고 강함을 알 수 있다. 응씨배 우승자 창하오와 중국랭킹 3위 저우허양, 삼성화재배 우승자 뤄시허까지 3명을 합해야 이창호의 이름에 값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측 선봉장인 랭킹 1위 구리 7단과 그와 맞서는 동갑내기 이세돌 9단의 대결에선 이세돌 쪽이 단 1%라도 우세해 보인다. 쿵제(랭킹 2위).후야오위(랭킹 4위)는 최철한과 박영훈 몫이다. 양국의 랭킹 5위인 셰허와 조한승까지 비교해도 전력은 팽팽한 가운데 한국 측이 조금이나마 우세해 보인다. 최강자급에선 아직 한국이 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한국은 전처럼 절대적 우세는 아니지만 상대적 우세는 당분간 견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바로 그 다음 단계에 서 있는 기사들, 즉 한국의 안조영.목진석.박정상.김주호.원성진과 중국의 왕레이.딩웨이.추쥔.왕시.류싱 등을 비교해 보면 50대 50으로 진짜 팽팽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과 엇비슷한 실력의 기사들이 한국보다 더 많다는 점에서 '허리는 중국 우세'로 진단할 수 있다.

치고 올라오는 신예들의 전력은 어떤가. 한국은 지난해 신인왕인 강동윤 4단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수는 바로 중국 최고의 신예인 천야오예 5단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창호를 꺾고 세계무대 결승까지 도약한 천야오예의 기세가 더 강해 보인다. 천야오예는 중국 14위, 강동윤은 한국 20위.

한국은 믿었던 송태곤 7단이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윤준상.이영구.고근태 등 1987년생 삼총사들의 뒤를 위협하는 걸출한 신예는 김지석 외에 아직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15세인 구링이 외에 어린 신예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3~5년 후의 미래는 한국보다 더 밝아보인다.

박치문 전문기자

강원랜드배, 전초전 될 듯

오는 6일부터 1회 강원랜드배 한.중 바둑대전이 강원랜드에서 시작된다. 한국과 중국이 6명씩 대표선수를 내 연승전으로 맞서는 단체전이다. 세계바둑의 패권을 건 한.중 결전이 임박한 가운데 때를 맞춰 양측의 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오프닝 세리머니'가 열리는 것이다.

중국바둑이 단체전마저 석권한다면 개인전에 이어 농심신라면배에서 7년 연속 우승해온 한국의 단체전 신화도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된다. 한국은 선발전에서 조훈현 9단, 김동엽 9단,이세돌 9단, 안조영 9단, 홍성지 4단이 관문을 통과했다. 49세의 노장인 김동엽 9단이 잭필드배 우승에 이어 또다시 쾌거를 올린 것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이창호 9단이 시드로 참여해 6명의 대표가 결정됐다. 중국도 선발전을 치렀느데 신기하게도 선수가 거의 최정예에 가깝다. 응씨배 우승자 창하오 9단, 삼성화재배 우승자 뤄시허 9단, 중국랭킹 1위 구리 7단, 2004년 삼성화재배 준우승자 왕시 5단, LG배 결승에 오른 최고 유망주 천야오예 5단, 조선족 최고수로 각광받는 신예의 한사람인 박문요 4단이 그들이다. 총규모 7억원. 우승상금은 1억5000만원이고 준우승은 5000만원이다.

"바둑이 흥하면 국운도 흥한다"
중국 바둑 육성한 천이

중국 바둑 제일의 공로자로 존경받는 천이(陳毅)는 중국 현대바둑사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팔로군의 군단사령관이었다. 공산정부 수립 직후 상하이(上海) 시장을 지내고 곧 부총리가 돤 그는 해방 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둑 육성책을 적극 주창했다.

"중국 역사를 돌아볼 때 바둑이 흥하면 국운도 흥하고 바둑이 쇠하면 국운도 쇠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중국은 이리하여 바둑을 체육의 한 종목으로 만들어 체육국 산하에 두었고 국가 사절단을 보낼 땐 바둑고수도 반드시 포함시켰다. 이렇게해서 탄생한 중국의 신흥고수가 천쭈더(陳祖德.현 중국바둑협회 주석) 9단이고 그 뒤를 이은 인물이 1980년대 중반 세계 최강자로 지목받았던 녜웨이핑(衛平) 9단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변방의 한국바둑이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천이의 주장대로라면 하늘을 찌를 듯한 한국의 국운이 일본의 국운은 물론 중국의 국운마저 눌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중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세계대회를 잇따라 제패하면서 한.중 바둑전선에 피바람이 몰아칠 기세다. 한.중 바둑대결을 한.중의 국운 경쟁으로까지 비약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 국가로 등장한 중국의 모습과 때를 맞춘 중국 바둑의 세계 제패가 천이의 '국운론'을 슬그머니 돌아보게 만든다.

천이의 동상은 지금도 중국기원에 높다랗게 서 있다. 그는 바둑의 스포츠화에 실패해 우울해 하고 있는 한국바둑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천이는 40여년 전 중국 바둑을 체육의 한 종목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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