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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해외 투자는 자식 유학 보내듯이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가면 지평선이 보이는 곡창지대가 있다. 10년 전 필자가 증권업에서 리서치 업무에 종사하던 시절, 그곳에서 국내 증시전망을 주제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고령화된 우리 농촌의 실상을 보여주듯 강연회 참석자들의 연령이 얼핏 보기에도 50대를 훌쩍 넘었고 대부분 들판에서 농사일을 하다 부랴부랴 달려온 모습이었다. 한국경제와 주가전망의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됐을 때 새마을 점퍼를 걸친 어르신께서 질문을 던졌다. "헤지펀드 지수인가 뭔가가 벌써 5% 넘게 빠졌소. 앞으로 어찌되는 거요?" 순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질문 내용을 확인한 다음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글로벌 헤지펀드 시장의 운용 성과를 보여주는 인덱스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펀드에 투자한 것이었다. 필자는 아직도 평생 벼농사 짓고 살아오신 듯한 그 분이 어찌하여 이역만리 얼굴도 모르는 헤지펀드 매니저의 운용 성과에 당신의 알토란 같은 자산을 투자하셨는지 알지 못한다. 당황한 탓에 질문에 제대로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기억만 부끄럽게 남아 있다.

고령화 시대 해외투자 성공법

지금 우리에게 해외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 일등인데 은퇴 이후 생활 수준을 가늠해 주는 소득 대체율은 기껏해야 50% 남짓이다. 노후 생활비의 절반만 각종 연금에서 받을 수 있다니 저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투자해야 그나마 편한 노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 투자대상이 마땅치 않다. 특히 전통적인 투자대상인 주식과 채권의 기대수익률은 과거보다 못하다. 당연히 해외투자로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에서는 2000년 대 초에 이미 공모 펀드 시장의 60%가 해외투자펀드였다고 한다. 문제는 어떤 자산에 어떻게 투자하느냐다.

모름지기 모든 투자에는 귀를 쫑긋하게 하는 왕도가 없다. 듣기에도 진부한 정설만 있을 따름이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잘 아는 곳에 분산해서 장기 투자해야 된다는 정설이다. 해외투자도 예외는 아니다. 첫째, 남이 한다고 따라 하지 마라. 그 사람도 남을 따라 하고 있을 수 있다. 수년 전에 갑자기 적지 않은 지인들이 어떤 개도국 국채에 투자해서 손해를 봤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필자에게 묻던 기억이 생생하다. 남들이 하고 또 증권사와 은행 직원이 권했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질책하기에는 상대방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둘째는 아는 곳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농사 일손 멈추고 강연회 오신 분들이 과연 글로벌 헤지펀드 성과를 평소에 가늠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제조업에 종사하면서도 주식과 외환 투자에서 꾸준히 좋은 수익을 올리는 분을 본 적이 있다. 평생 종사하던 산업에서 쓰이는 원료와 연료 관련 주식, 그리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분석하던 특정 통화에만 투자하고 있었다. 셋째는 분산해서 장기투자하는 것이다. 해외투자는 국내와 비교해서 아무래도 투자대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쉬우니 위험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해외투자도 주식과 채권으로 분산해야 된다. 그리고 꾸준히 성과를 기다려야 한다. 개도국 국채도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만 없다면 만기까지 기다려 볼만 하다.

자식을 해외 유학 보내려면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교는 좋은지, 살 동네는 안전한지,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을지 걱정이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검색하는 것도 모자라 휴가를 얻어 직접 가보기도 한다. 외국 지도를 들여다보고 은행 가서 환율 동향판을 쳐다 보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 세상에 어지간한 효자 아니면 부모 노후를 의탁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럴 바에는 자식 유학 보내느라 쏟는 정성의 절반만이라도 해외투자를 위해서 고민하자. 성공한 해외투자가 당신의 노후를 위해서는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 물론 듬직한 조카 같은 조언자가 옆에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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