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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그대는 야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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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처럼 우리집도 명절 후유증이 심각하다.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말이 없다. 한마디 건네고 싶지만 아내의 표정이 시베리아 벌판이다. 말이라도 건넸다가는 아내의 눈빛에 그만 얼어붙을 것 같다. 나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 죽을 각오로 한마디 걸어본다.

"왜 그래?" "뭘?" "몰라서 물어? 왜 그렇게 뚱해 있어?"

"자기야말로 몰라서 물어?" "몰라 난…."

"모르겠지. 아니 모르고 싶겠지."

내가 모르는, 또는 알고 싶지 않은 사건의 진실은 이렇다. 명절이면 남편은 사라진다. 2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때로 다투고 때로 달래면서 겨우 사람 만들어놓은 남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대신 끔찍한 가부장이 나타난다. 평등하고 가정적인 남편은 못 되지만 적어도 그런 남편을 지향하는 시늉이라도 내던 남편은 실종되고 그야말로 거만하고 권위적인 가부장이 나타나는 것이다.

명절 때 남편이 시댁에 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배부른 돼지'처럼 그저 먹고 자는 일밖에 없다. 평소 집에서는 '입맛 없다'며 몇 숟갈 들지도 않던 사람이 시댁에만 가면 그렇게 먹성이 좋을 수 없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다 먹을 때까지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한 그릇 더 드시게."

아내는 남편에게 '해라체'를 쓰는데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하오체'를 쓰신다. 기가 산 남편은 그릇을 들어 물 달라는 시늉을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물을 갖다 바친다. 그때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은 과연 무수리 따위를 내려다보는 왕의 오만함으로 스멀거린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 심기를 살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자상한 남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식사 때 수저와 반찬을 내던 가정적인 남편은 누가 납치라도 해갔는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던 그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단 말인가.

아내에게 명절 시댁에 가는 일은 전근대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시간여행' 같은 것이다. 어떤 때는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길이 가부장 질서 속으로 넘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는 매번 명절 때마다 시차적응을 못해 멀미와 두통으로 시달린다.

아내의 고통은 그뿐이 아니다. 아내는 쾌변이라 할 정도로 똥을 잘 누는 편인데 시댁에만 가면 변비로 고생한다. 화장실과 거실이 가까운 시댁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내에게 변비는 현대와 전근대의 시차에서 오는 생리적 현상이다. 가부장 질서 속에서 겪는 그 모든 스트레스에 대한 아내 몸의 농성이고 시위다. 명절에 남편은 밥만 먹었다 하면 방으로 들어가 잔다. 시어머니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운지 담요를 꺼내어 덮어주면서 변비로 얼굴이 노래진 며느리에게 말씀하신다.

"아범은 배가 차면 설사를 하는데…."

명절이면 아내는 변비에 걸린다. 다음 명절에는 아내의 변비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남편 실종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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