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열린 2월 경매에 추사의 제주 유배시절(1840~48) 초기작으로 추정되는 글씨 한 점이 나왔다. ‘閉門卽是須壁山(폐문즉시수벽산)’, 문을 닫으면 산 속에 있는 것 같다는 뜻이다. 오십대 중반에 들어 험지로 귀양살이를 떠난 추사의 마음을 비추는 글귀다. 강건하면서도 괴(怪)하고 조형미 넘치는 평소 추사체보다는 다소 순하고 부드러우면서 자유분방한 느낌의 서체가 정감 있다. 글씨에서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 정갈한 기운이 흘러넘친다. 좋은 작품은 알아보는 눈이 많은 법이다. ‘폐문즉시수벽산’은 여러 응찰자가 수차례 경합한 끝에 낮은 추정가 2500만원을 2배 이상 뛰어넘는 52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날 경매장은 추사의 글씨 덕에 고미술 부문이 골고루 조명받으며 낙찰률 84%를 기록했다. 김영복 케이옥션 고문은 “추사 작품이 팔린다는 건 그간 침체됐던 고미술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밝은 조짐”이라고 평가했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최근 펴낸 『안목(眼目)』(눌와)에서 추사의 장인정신을 기리며 그가 절친인 권돈인(1783~1859)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을 소개했다. “제 글씨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저는 일흔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습니다.” 유 교수가 책에 소개한 개인 소장의 ‘賜書樓(사서루)’는 이런 치열한 수련으로 일군 절정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일찌감치 추사 글씨의 요체를 알아본 박규수(1807~77)의 안목이 정곡을 찌른다.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一法)을 이루었으니, 신(神)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하였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