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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바다로 간 ‘병맛’, 주성치표 인어공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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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감독(가운데).

주성치 감독(가운데).

이뤄지지 않은 사랑 때문에 안타깝게 물거품이 돼 사라진 인어공주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잊어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가 ‘주성치(周星馳·저우싱츠)표 코미디’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미인어’(2월 22일 개봉, 주성치 감독)는 인어 산산(임윤)이 부동산 재벌 류헌(덩차오)에게 접근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코믹하게 담은 영화. 지난해 1월 중국 개봉 당시 ‘역대 흥행 1위, 흥행 수익 30억 위안(약 5000억원) 돌파, 누적 관객 1억 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magazine M이 ‘미인어’로 다시 한 번 대중성을 증명한 주성치(54)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인어’ 주성치 감독

‘미인어’에는 이기적인 인간들 때문에 삶의 터전이던 바다를 빼앗기고 청라만에 숨어 사는 인어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돈밖에 모르는 젊은 부동산 재벌 류헌이 무분별하게 청라만을 개발하려 하고,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인어들은 극비리에 계획을 세운다. 바로 가장 예쁜 인어 산산을 육지로 보내 미인계로 류헌에게 접근시킨 뒤, 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자는 것.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류헌과 산산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끌리기 시작한다. 주성치 감독은 인간을 사랑한 인어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하며 “동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인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6년 넘게 걸렸다고.
“나는 영감받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이것저것 연관된 아이디어를 계속 채워 나간다. 그러다 ‘때가 됐다’고 느낀 순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개발한다. ‘미인어’는 6년 전 처음 구상했고, 4년 전 ‘인간의 선하고 아름다운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어릴 적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는데,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저 안에는 뭐가 있을까?’ 상상하곤 했다. 늘 바다 깊은 곳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수영할 때마다 긴장했던 기억이 떠오른다(웃음). 내게 바다는 두렵고도 신비한 존재다. 끝없이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어릴 적 기억 때문에 인어 이야기에 푹 빠진 것 같다. 내가 동화에 중독된 사람이기도 하고.”
동화를 좋아한다고?
“내 전작들 모두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동화 속 세계에선 나쁜 사람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행복한 결말을 맺지 않나. 난 그런 이야기가 좋다.”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인어공주 스토리를 환경 문제와 엮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실 모두가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론 ‘편안한 삶을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욕심을 앞세워 점점 더 개발에 열을 올리지 않나. ‘미인어’는 동화 속 인어를 현실의 도시로 불러내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는 이야기다. 나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관점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입장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동화에선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잃는 대신 다리를 얻지 않나. 하지만 이 영화에선 인어의 지느러미를 잘라 발처럼 움직이게 한다. 이 때문에 인어도 물 밖에서 장시간 지낼 수 있다. 또 인간의 음식을 먹기도 한다. 단지 물속에서 살아갈 뿐, 인어도 인간과 똑같은 존재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영화를 보니 특유의 말장난 개그는 여전하지만, 가학성이나 과도한 리액션은 절제돼 있더라.
“단지 웃기기만 한 영화를 만드는 건 내 목표가 아니다. 나는 영화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고,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 ‘미인어’를 만들 때도 관객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보고 싶어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에 맞춰 이 영화의 수위를 조절했다.”
인어 다리와 문어 다리 그리고 물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구현한 CG(컴퓨터 그래픽)가 눈에 띈다.
“창의력이 기반이 돼야 CG 효과도 잘 살아난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서유기:모험의 시작’(2013)의 후반 작업을 함께했던 한국 회사 매크로그래프가 이번에도 VFX(Visual FX·시각 특수효과) 작업을 맡아 큰 도움을 줬다.”

미인어의 주인공인 산산을 연기한 임윤은,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12만 대 1의 경쟁률을 제치고 발탁된 신예다. 최종 오디션에서 조감독이 “촬영하려면 삭발해야 한다”고 하자, 잠깐의 고민도 없이 “해야죠!”라고 흔쾌히 대답한 임윤은 결국 그 자리에서 ‘미인어’의 주인공 합격 통보를 받고 ‘대륙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중국에서 임윤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그의 어떤 점에서 산산의 모습을 발견했나.
“사실 다른 선택지가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임윤이 눈에 띄더라. 그는 오디션 당시 주목받기 위해 애쓰는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조용하고 침착하게 연기했다. 물론 경험이 부족해 연기는 굉장히 어설펐지만 ‘코미디에 재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웃음 포인트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공중 와이어 액션이나 수중신을 소화할 만큼 체력도 튼튼했고, 끝까지 해 보려는 정신력도 상당하더라. 쉽지 않은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를 선택했다.”
‘서유기:모험의 시작’에 출연한 나지상, ‘CJ7:장강7호’(2008)에서 호흡을 맞춘 장우기와 달리 덩차오와의 작업은 처음이다.
“덩차오는 중국 최고의 배우다. 그는 코믹한 감정을 살리는 재능이 탁월하다. 예전부터 그가 출연한 TV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를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다.”
서극 감독, 배우 겸 감독 문장 등 영화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이들의 카메오 출연은 어떻게 성사됐나.
“둘 다 ‘서유기’ 시리즈(1994~)의 인연이다. 서극 감독의 경우 지난 1월 28일 중국에서 개봉한 ‘서유복요편’을 함께 작업했다(주성치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 그와 작업하며 내 인생의 코미디 한 편을 완성한 느낌을 받았다. 또 한 번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부탁했다. 문장 역시 ‘서유기:모험의 시작’에서 작업한 인연으로 출연해 줬다.”
당신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항상 당신이 최고의 감독이자 연기 스승이라 말한다. 감독이자 배우로서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하다.
“배우들과 일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후배들에게 굉장히 엄격하다는 사실이다(웃음). 내가 생각한 연기가 나오지 않을 땐 바로 시범을 보인다. 하지만 캐릭터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그 역할을 맡은 배우다. 되도록 그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한다.”

'서유기' 시리즈와 '주성치의 파괴지왕'(1994, 이력지 감독) ‘식신’(1996, 주성치·이력지 감독) ‘희극지왕’(1999, 이력지 감독) ‘소림축구’(2001, 주성치 감독) ‘쿵푸허슬’(2004, 주성치 감독) 등으로 자신만의 웃음 미학을 세계에 전파한 ‘코미디의 제왕’ 주성치. 하지만 ‘CJ7:장강7호’ 이후 그는 연기보다 연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배우 주성치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니까.

‘미인어’ 개봉 소식이 전해지면서 감독과 제작자가 아닌 배우 주성치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다.
 “절대로 연기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좋은 캐릭터가 있다면 당연히 출연할 생각이다. 아쉽게도 그런 작품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차기작은.
“제작과 각본을 맡은 ‘서유복요편’이 최근 중국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도 곧 개봉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아직 밝힐 순 없지만,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작업 중이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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