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고행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달프고 지루하고 고통스럽던 귀성길이 다시 돌아올때도 반복됐다. 1시간이면 와 닿을수 있는 천안∼서울간 고속도로 구간이 장장 5시간이나 걸렸고, 넘치는 차량들로 뒤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고속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마중나갔던 가족들도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가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고속도로 2차선이 3차선, 4차선으로 뒤범벅이 되고 끼어들기와 겹치기로 혼란과 무질서의 극을 이뤘다. 엔진과열로 고장이 나거나 연료가 다 떨어져 멈춰버린 차량, 접촉사고로 시비가 붙은 차량들로 체증과 마비현상이 가위 살인적이었다.
모처럼의 귀향과 성묘길이, 가족들과의 연휴 나들이가 피로와 스트레스만 가중시킨 고행길이었다.
연휴나 명절때면 으례 겪는 홍역이다. 차량이 기하급수로 늘어 이번 연휴에는 좀 더 심했을 따름이다.
차량증가 추세를 미리미리 예측해 일찍부터 도로를 넓혔거나 대량 수송수단을 확충해 두었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부고속전철 건설은 10여년이내 신문지상에만 수없이 오르내렸고, 경부고속도로 일부구간 확장공사도 뒤늦게 착수, 공사가 지지부진하다.
쾌적하고 안전한 대량 수송수단이 구비되어 있다면 애써 차를 몰고 먼 길을 뗘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동경에는 차량보유댓수가 자그마치 4백만대나 되지만 출근길에 차를 몰고 나오는 시민들은 극소수다. 모두가 빠르고 편리한 전철과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서울의 차량 보유댓수가 이제 겨우 60만대를 넘는 걸음마 단계에서 서울의 교통이 밤낮없이 폭주하고 이번처럼 연휴 체증현상이 빚어지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가에 대해 정책당국자들은 뼈저린 각성을 해야 할것이다.
경제발전과 소득의 향상으로 차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고 있다. 공로문제는 이제 조금도 유예할 수 없는 발등의 불이다.
공로와 교통정책에 눈을 떠야 한다는게 이번 연휴가 가져다준 교훈임을 자각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미리 손을 쓰지 못한 정책타령만 하는게 아니다. 지금의 협소한 여건에서도 운전자들이 질서를 지키고 당국이 교통소통을 위한 갖가지 지혜와 노력을 기울였어도 사정은 훨씬 달랐을 것이다.
모든 운전자들이 답답하고 짜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고, 양보의 미덕을 보였더라면 전쟁 북새통같은 아수라장은 피할 수 있었다. 죽기살기로 한치라도 앞서고 끼어들어야 후련해하고 마치 생존경쟁에서 이기는듯 생각하는 일부 몰지각하고 타락한 저질 운전자가 모두의 대오를 흐트려버렸고 질서를 파괴했다. 휴게소마다 마구버린 산더미같은 쓰레기는 시민수준의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평소 요소요소에 숨어서 단속하던 그많은 교통경찰은 이번연휴에 어디로 증발했으며 교통소통을 위해 과연 무얼했는지 알고 싶다.
교통정보만이라도 톨게이트나 방송을 통해 제대로 알려주고 국도나 지방도등 우회도로로 유도해 주었어도 사정은 한결 나았을 것이다.
고통스럽고 쓰디쓴 경험은 단 한번으로 족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같이 반성하고 노력해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