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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3. 마약 유혹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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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연주에 몰입한 젊은 시절의 필자.

LSD의 약효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맥주를 추가로 시켰다. 내 앞에 맥주병이 배달됐다. 그런데 갑자기 맥주잔이 내 품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손을 내밀어 잔을 붙잡았다. 그제야 히피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환각이야."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술집이 비뚜름하게 기울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 봐도 수평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빨리 집에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명동 거리를 걷는데 길 양쪽으로 서 있는 빌딩들이 끝이 맞닿을 듯 휘어져 있었다. 광각렌즈로 찍은 영상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당시 미도파백화점 앞에 택시 승강장이 있었다. 뛰어가 택시에 올랐다.

"신촌 갑시다."

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운전석을 보니 사람이 아니라 부처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사람이었다.

내가 살던 신촌 단칸 셋방을 간신히 찾아갔다. 문을 열면 부엌이고, 부뚜막 옆의 작은 방문을 열면 방이 나오는 구조였다. 부뚜막에 올라가 문을 열고 방애 들어가자마자 정신이 더욱 혼미해졌다.

방 한가운데 대자로 누웠다. 갑자기 온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녀들이 공중에서 예쁜 음악을 들려줬다. 벽에 걸린 사진은 앞으로 튀어나왔다가 벽 뒤로 들어갔다가, 공중에 빙빙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물주전자도 방안을 둥둥 떠다녔다. 어지러워 눈을 감으면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그렇게 열 시간이 흘렀다. 내가 느낀 가장 환상적인 세상이었다. 대마초도 환각 작용은 비슷했다. 그러나 LSD처럼 컬러풀하지 않았다. 대마가 평온한 환각이라면, LSD는 화려한 환각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환각에서 깨어나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 뒤로 1주일간은 아무 일도 못했다. 곡도 못 쓰고, 연주도 못했다. 환각의 쇼크는 치명적으로 몸을 망가뜨렸다. 회복 기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마약을 하게 되면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겁이 덜컥 났다. 마약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경험으로 깨달았다. 난 사이키델릭 음악의 원류가 궁금해 환각을 체험한 것뿐이었다. 한 번이면 족했다.

마약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자꾸 그 세계를 경험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더 없이 좋았으니까…. 후유증이 너무 크고 무서웠다. 그 세계를 완전히 떠나야 유혹을 떨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히피들과 결별했다.

사실 그 시절엔 널리고 널린 게 대마초였다. 나는 1968년께 대마초를 처음 경험했다. 72년께야 시중에 대마가 나돌기 시작했다. 가수 몇 명이 내게 "마리화나 아세요?"라고 물었다.

"우리 집에 산더미같이 있어"

난 그들에게 집에서 굴러다니던 마약을 다 줘버렸다. 그래서 나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이 터졌을 때 내가 총책이 되어버렸다. 그땐 대마초 따위가 문제가 될 줄도 몰랐다. 나중에 법이 제정되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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