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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0시간 초과 근무 말자”… 삶을 바꾼 선창산업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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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오랜만에 설거지와 청소를 해봤습니다. 아내가 참 좋아하더군요. 어쩌다 쉴 때만 할 수 있던 등산도 시간까지 정해두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아내와 함께죠. 월급이 조금 줄어도 삶의 질이 높아진 걸 느낍니다.”

연장수당 줄어든 대신 기본급 올려 #“여가시간 늘어 가족들도 좋아해 #임금 5% 줄었지만 삶의 질 높아져” #청년들 몰려들어 … 70명 새로 채용

인천 월미도에 있는 종합목재업체 선창산업 남유식(53)씨의 삶은 지난해부터 확 달라졌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덕분이다. 선창산업은 지난해 ‘12시간 2교대’ 체제를 ‘8시간 3교대’로 바꿨다. 이전까지 이 회사 근로자는 연장근로를 포함해 주당 66시간 정도를 일했다. 평일 평균 13시간이 넘는다. 이쯤 되면 근로자는 지친다. 가정을 돌볼 여유도 없다. 피곤하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선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회사가 결단을 내렸다. 노조에 먼저 근로시간 단축을 제안했다. 한데 문제는 역시 임금이었다. 임금이 기존의 75% 수준으로 감소하는 상황이었다. 초기 노사 협상은 결렬됐다.

임금 문제가 걸린 이상 노조가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회사가 다시 나섰다. 연장(휴일)근로수당이 줄어드는 대신 기본급을 올려 기존 임금의 95% 수준을 보장키로 했다. 통상임금을 확 올려 초과근로 유혹을 없애겠다는 결단이다. 비록 임금이 좀 떨어지지만 삶의 질이 높아지는데 노조가 화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남씨는 “수중의 돈이 줄어든다는 점 때문에 이견이 없진 않았다”며 “하지만 임금 감소분만큼 새로 사람을 뽑겠다는 회사의 설명에 노조원들도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선창산업은 지난해 70명의 직원을 새로 채용했다. 전체 근로자 수가 450명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인력 충원이다. 이전까지 신규 채용 인원은 기껏해야 연 3~4명 수준이었다. 송해석 관리본부장은 “노조는 물론 사업부서에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있었지만 근로시간 단축이란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말자는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다른 회사 인재까지 선창산업으로 유입됐다. 유환섭(30)씨가 그렇다. 유씨는 “근로시간이 단축된다는 게 요즘 청년에겐 얼마나 중요한 일인 줄 모른다”며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직종까지 바꿔서 선창산업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주 2~3회 정도 볼링 동호회 모임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근로시간을 줄인 이후 회사 분위기도 좋아졌다. 자신과 가족을 챙기게 되면서 만족감이 사내에 퍼졌다. 안태신(40)씨는 “12시간 일할 땐 퇴근해서 잠자기 바빴는데 요즘엔 초등학생 아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건강 관리도 하게 돼 체중이 10㎏ 줄었고, 일할 때 집중력과 능률도 더 오른다”고 말했다.

직원 수가 늘면서 회사는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그렇다고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송 본부장은 “아직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한 지 1년이 안 돼 효율을 논하기는 좀 이르다”면서도 “잠정 집계 결과 생산성이 15~20%가량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장원석 기자, 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4) 인턴기자 wol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