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코앞인데 문구거리 썰렁, 그 많던 학생들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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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1일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의 한산한 모습. 상인들은 “문방구 감소, 대형마트와 인터넷 쇼핑이 늘면서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21일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의 한산한 모습. 상인들은 “문방구 감소, 대형마트와 인터넷 쇼핑이 늘면서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지하철 동대문역 근처에서 동묘역 방향으로 280m 가량 이어진 거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문구·완구점 100여 곳이 모여있어서 매년 신학기를 앞둔 2월에는 인파가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지난 21일 오전 11시에 찾은 거리에는 평범한 시장 골목보다 손님이 적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신학기의 설렘과 분주함은 없었다. 24년째 이 거리에서 문구상을 해왔다는 한준호(52)씨는 “그나마 지금이 사람이 많을 때다. 늦은 오후가 되면 거리가 텅 비다시피한다”고 한숨 지었다. 이날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인적은 확연히 줄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상인들이 상점 앞에 내놨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대체로 오후 6시면 하루 장사를 접는다고 했다. 해마다 매출과 손님이 줄고 있어서다.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가보니 #100여 개 점포 해마다 매출 급감 #출산율 줄고 마트·인터넷 구매 급증 #학교 일괄구매 제도로 결정적 타격 #“관광특구 지정했지만 큰 도움 안 돼”

문구·완구거리는 한때 대한민국 문구류 시장의 축소판이었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돼 서울은 물론 전국 소매·중간상과 거래했다. 낱개나 소묶음으로도 정가보다 30~40% 싼 값에 물건을 살수 있어 소매 손님도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 인터넷 쇼핑까지 가세하면서다. 완구상 노시내(47)씨는 “대형마트에서 문구·완구를 파니 주부들이 장을 보러 간 김에 거기서 학용품을 산다”며 “가격이 더 싸긴하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나와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산율 감소는 상인들의 근본적인 걱정거리다. 완구상 강계성(51)씨는 “아이를 낳질 않으니 그만큼 손님도 준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매출이 30% 가량 줄었다”고 했다. 여기에 2011년 ‘학습준비물 지원제도(학교가 직접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에게 공급)’는 엎친데 덮친격이 됐다. 이 제도로 인해 문구·완구거리의 주고객이던 ‘학교 앞 문방구’가 대거 사라졌다. 실제 학교 앞 문방구는 해마다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전국 2만583곳에 이르던 ‘문구용품 소매업장’(문방구)은 1만2364곳(2014년 기준)으로 줄었다. 이 거리에서 2층 규모(260㎡)로 문구상을 하는 오세인(66)씨는 “5~6년 전 거래하던 문방구가 30~40집은 됐는데 지금은 5집 정도”라고 말했다. 문구거리 상인들은 동네서점 감소로 부도에 이른 ‘송인서적’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그나마 주말 오후엔 손님들이 붐빈다. 중국인 관광객과 학용품을 사러 나온 학생과 부모들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실제 매출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상인 김모(45)씨는 “주말이면 손님이 좀 있지만 5~6명 되는 일행이 1만원이 안 되는 장난감이나 노트 몇 천원어치 사는 수준”이라며 “도매로 팔아야 수익이 나는 우리 입장에선 큰 도움은 안되지만 그래도 안파는 것보다는 나으니 쉬는 날 없이 문을 연다”고 말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주말 장사 역시 ‘외화내빈’인 셈이다.

상인들은 거리의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06년 이 거리는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지난해 종로구와 상인들은 거리 입구에 연필 모양 조형물을 세우고, 거리 바닥에 캐릭터 블록도 붙여놓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엔 역부족이다. 상인 박모(51)씨는 “출산율이 늘고, 학교 앞 문방구가 다시 늘어나지 않는 한 이 거리가 활기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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