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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정교과서 실패, 여전히 남 탓만 하는 교육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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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남윤서 사회1부 기자

남윤서 사회1부 기자

“교육감과 시민단체의 외압 때문에 학교들이 자율적으로 연구학교를 신청할 수 없었습니다.”

국정 역사 교과서 정책을 총괄하는 금용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작심한 듯 국정화 반대세력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날 교육부는 올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할 연구학교가 전국에서 경북 문명고 한 곳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학교도 학생·학부모의 반발이 심해 철회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교육부로서는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계획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발표하는 ‘뼈아픈’ 자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육부는 희망하는 학교에 국정교과서를 보조교재나 도서관 도서로 사용할 수 있게 배부하겠다고 했다. 44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국정교과서가 교과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사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시작부터 험난한 길이 예고됐다. 국정화가 세계적 추세에 어긋나는 데다 진보 진영의 반발도 거셀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반대 진영에 대한 설득과 공감대 형성 노력은 거의 하지 않은 채 국정교과서 편찬작업만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뒤 나온 교과서도 오류투성이였다. 760개의 오류를 수정한 ‘최종본’에서도 오류가 속출해 또 다른 ‘최종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일반 국민의 신뢰까지 잃어버렸다. 신뢰를 잃은 교과서가 설 곳은 없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교육부는 이날도 여전히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금 실장은 “교육감 등 외부의 영향력 행사로 연구학교 신청이 적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교과서 사용을 희망하는 학교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물론 연구학교 신청 과정에서 서울·광주·강원 교육청은 교육부의 신청 안내 공문조차 일선 학교에 전달하지 않았다. 공문을 전달하면서 반대 의견을 첨부한 교육청도 있다. 또 연구학교를 신청하려는 일부 학교에는 전교조 등 국정화 반대 단체들이 몰려가 집회를 벌였다. 이 소식을 듣고 국정화 찬성 단체들이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학교들로서는 자율적으로 신청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씁쓸한 상황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교육감이나 전교조 등도 “교육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이들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건 어불성설이다. 누구보다 교육 현장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정책을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는 책임은 바로 교육부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남탓만 계속하다가는 그나마 남은 신뢰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뼈아픈 반성이 요구된다.

남윤서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