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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작품 리메이크 2003년판 '아리랑'

중앙일보

입력

영희가 기가 막혀! "서울간 울 오빠, 미쳐서 돌아왔네"

잘생긴 외모에 반듯한 모자, 걸어갈 때마다 바람에 휘날리는 망또복! 서울로 대학공부 떠나던 오빠 '영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아버지도 동생도 못 알아보는 오빠가 되었으니... 오호 통재라~! 만세 운동하다 못된 일본 놈들에게 고문 당한 것인데, 그 미친 중에도 친일파들을 알아보는 정신이 용타! 근데 저것 보소! '영희'네 집을 날마다 괴롭히는 악질 집안이 하나 있으니,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떵떵거리는 천가(家) 놈이렸다! 영진이가 그 놈네 식구만 보면 달려 들자, 빚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영진 아버지는 불쌍한 아들을 집에 묶어 두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기호가 기가 막혀! "영희는 내 것이여!!!"

저게 누군가? 옳거니! 영진과 함께 대학에 다니던 현구로구나.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것이렸다. 늠름한 현구 모습에 영희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네 그려. 이를 보는 천가네 망나니 아들 기호의 억장은 사정 없이 무너진다! 도둑 같은 기호 놈, 결국 빚을 노려 호시탐탐 영희를 노리더니 현구가 가르치는 학교를 한바탕 뒤집어놓는데...!

영진이 기가 막혀! "감히 내 동생 영희를 넘 봐? "

새로 부임한 주재소장을 맞는 마을 잔칫날. 어른이 나간 틈을 타 영진네 집을 찾더니 야수의 눈을 번뜩이며 기호가 영희한테 짐승처럼 덤비는구나! 욕보는 동생이 안중에 없는 영진의 정신은 언제나 돌아올꼬. 아무리 반항해도 무식한 기호 놈 팔뚝에 영희의 허리가 꺾어지려는구나. 바로 그때,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영진이 시퍼런 낫을 들고 기호에게 달려드는데. 과연 오빠 영진이는 영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제작노트

남북 동시 개봉 추진 중인 <아리랑>

2002년 10월, <아리랑>은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북한에서 공식 시사회를 가졌다. 이 날 시사회에는 북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리종혁 부위원장과 조찬구 문화부상 등 고위관계자와 조선예술 영화촬영소 고학림 연출소장, 북한영화 <림꺽정>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최창수 배우단 단장과 평양 시민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변사 양택조씨의 "필름돌려요"라는 말로 영화가 시작되자 평양 관람객들은 변사의 말에 따라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적시면서, 남측에서 만든 <아리랑>과 호흡을 같이 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한에서 제작한 영화를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상영하고 돌아온 이철민 대표는 "아리랑을 상영하는 동안 북측 관람객들이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 <아리랑>은 1926년 온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나운규의 <아리랑>을 70여 년 만에 리메이크한 작품. 나운규의 <아리랑> 이후 많은 리메이크 작품들이 있었지만,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살리면서 동시에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웃음과 눈물, 해학을 잘 우려낸 영화는 이제까지 없었다. 게다가 영웅적으로만 그려지던 주인공 '영진이'는 2003년판 <아리랑>을 통해 관객들 곁으로 조금 더 바짝 다가선 친근한 캐릭터로 다시 살아왔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웃음은 어떤 코미디영화보다 웃기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슬픔은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진하며, 배우들이 보여주는 오버연기는 얼큰한 된장국처럼 구성지다. 이것이 바로 인스턴트 식품 같은 한국영화계에 당당히 도전장을 낸 영화 <아리랑>의 자존심이다. '웃기면 실컷 소리내어 웃고, 화가 나면 큰소리로 화를 내고, 눈물이 나면 참지 말라!' 영화의 오프닝을 시원하게 열어주는 구수한 변사의 입담과 함께 울고 웃고 화내다 보면, 가슴의 응어리가 완전히 녹아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씨네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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