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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무역흑자 232억 달러 … 한국은 지금 ‘흑자 줄이기’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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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상수지는 국가 간 경상 거래(자본거래를 제외한 상품의 매매, 서비스의 수수, 증여 등)를 통해 벌어들인 돈과 지출한 돈의 차이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건 대체로 상품, 서비스 등의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은 주로 상품 수출을 수입보다 많이 한 덕에 지난해 12월까지 58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수출 감소액보다 수입액이 더 줄어든 ‘불황형 흑자’ 논란이 있긴 해도 경상수지 흑자는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주요 근거다. 이런 경상수지 흑자가 ‘애물단지’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가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딴죽을 걸어서다.

환율조작국 지정 ‘4월 위기설’ #무역불균형 단시간에 바꾸기 어려워 #“셰일가스, 항공기 등 수입 확대 필요”

지난해 대(對)미 무역수지 흑자는 232억4600만 달러(관세청 집계)다. 이를 근거로 오는 4월에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2월 발효된 교역촉진법에 따라 매년 4월과 10월 주요국의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여기에서 ①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고 ②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이며 ③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GDP의 2% 이상인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환율조작국이 되면 미국 정부 조달시장 진출 제한과 같은 통상 제재를 당한다. 어렵게 회복한 수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국은 세 가지 조건 중 앞의 두 가지를 충족하고 있다. 그래서 ‘4월 위기설’도 제기된다.

한국 입장에선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미 흑자 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쉽지 않다. 양국의 교역 특성상 그렇다. 관세청이 분류한 97개 교역 품목 중 지난해 한국이 흑자를 본 건 39개다. 적자 품목(58개)보다 적다. 그런데 주요 제품의 흑자 폭이 크다. 지난해 자동차 및 부품의 흑자 규모는 197억1300만 달러다.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84.8%에 이른다. 전자기기(73억3200만 달러), 기계류(43억1700만 달러)도 많은 흑자를 냈다. 반면 한국이 미국에 가장 적자를 많이 본 건 정밀기기ㆍ의료용기기 분야인데 적자 규모는 21억1800만 달러에 머문다.

한국이 흑자를 많이 낸 자동차산업 등에 대한 양국 간 무역 불균형 해소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시장 구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우위를 갖는 대형차가 한국에선 인기가 없고,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의 중산층 이하 계층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고, 한국산 부품도 미국 현지 기업으로 많이 수출된다”며 “이런 구조를 단시간에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리기엔 한국의 경기도 좋지 않다. 경기 부진 장기화로 소비 수요가 늘지 않아서다.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행보가 거침없다. 상대적 약자인 한국은 ‘성의’라도 보여야 불똥을 피할 수 있다. 정부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셰일가스를 연간 25억 달러어치 수입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셰일가스 등 원자재 수입 확대를 비롯해 정밀기기, 항공기 등 미국이 우위에 있는 분야의 수입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 자동차 기업의 미국 직접 투자를 확대하고 미국 현지에서 조달하는 부품의 비율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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