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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주부는 국 남비의 국물 한 숟가락으로 국 전체의 맛을 알아본다. 세균학자가 저수지의 수질검사를 할때도 한 방울의 물이면 된다. 우리 몸의 혈액검사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의 원리다. 미국에서는 벌써 1820년대부터 여론조사가 시작되었다. 1824년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사는 잡지 독자, 전화 가입자, 자동차 소유자를 대상으로 무려 1천5백만통의 설문지를 보냈다. 그 답신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자들의 지지율을 짐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빗나가는 수가 많았다. 1936년 대통령 선거때는 1천만명으로부터 설문을 수집해본 결과「A·M·랜던」후보지지가 압도적이었다.
그의 지지율이 57.1%인 것에 비해「F·D·루스벨트」의 지지는 42.9%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반대였다.「루스벨트」는 62.5% 지지로 압승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의 여론조사엔 한가지 맹점이 있었다.「국물 맛보기」식이 아니었다.
국물 한 숟가락으로 국 전체의 맛을 알려면 먼저 휘휘 저어 맛이 고루 풀어지게 해야한다.
그 점에서 성공한 여론조사가「비례 할당법」이었다. 국 남비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국물을 떠서 맛보는 일이다. 그무렵 포천잡지나 갤럽은 불과 2천명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서「루스벨트」의 승리를 예측했었다.
땅이 넓고 인종이 다양하고 연방들이 모여 한 정부를 이룬 미국같은 오합지중의 나라가 큰 탈없이 발전만 잘하는 정치비결이 있다면 바로「여론존중」이다.
우선 민주주의를 제대로만 운영하면 말없는 다수의 소리까지도 들린다. 언론이 자유롭게 여론의 방향을 이끌어가고, 그런 여론이 형성되면 또 그것을 그대로 알려준다. 미국에는「여론」을 상품으로파는 회사들까지 번성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창간이래 무려 30여회에 걸쳐 갖가지 여론을 조사해 발표했다.「중산층 의식」을 가려낸 것도 중앙일보 여론조사의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위정자들은 백마디 미사여구보다 먼저 여론에 귀를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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