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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간 22주년특집|초전도 제3의 산업혁명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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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0세기 최대의 산업혁명은 일어날 것인가. 올 들어 세계 과학계가 「제삼의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고온 초 부도체 개발』이라는 과제를 두고 흥분과 열기에 휩싸여 있다. 전류가 에너지의 손실 없이 흐를 수 있게 하는 초 부도 현상-.
이것이 실용화되면 전기와 관련된 모든 인간생활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지난 3월 미 뉴욕에서 열린 「신 고온 초 부도체 재료심포지엄」엔 단일주제로는 기록적인 3천여 명의 과학자들이 모였다. 매스컴은 이를 「물리학의 우드 스토크 페스티벌」이라고 보도했다.
학회의 성황을 60년대 광란했던 로크음악 페스티벌에 비유한 것이다. 금년 들어 초전도와 관련된 모임은 어디서나 요란하다. 새로운 논문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왔다.
◇초전도란=물질의 성질을 연구할 때 온도는 중요한 요인이다. 물이 온도에 따라 수증기나 얼음이 되듯 물성은 온도와 깊은 관계를 갖는다.
이론적으로 저온은 고온과는 달리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온도가 섭씨 영하2백73.15도. 이 온도를 절대온도(K0도)라고 부른다.
1908년에 네덜란드의 과학자 「커머린·온네스」가 영하2백69도라는 저온을 얻어 기체 헬륨을 액체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온도는 절대O도 보다 불과4.15도 높은 것이었다.
이런 극저온에서 금속의 특성을 살피던 「온네스」는 1911년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극저온에서 금속의 저항이 갑자기 O으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실험이 잘못된 줄 알았으나 여러 가지 금속에서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초저온에서 전류가 흐를 때 전혀 저항이 없는 완전도체의 탄생을 의미한다.
1933년 독일의 「마이스너」는 또 다른 기묘한 현상을 발견했다.
초전도체는 자기양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석은 금속을 끌어당기는데 초전도체는 오히려 밀어내는 것이다. 초전도체가 갖는 완전 반자성 성질의 발견이 이뤄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금속이 극저온으로 냉각되면 나타나는 초 부도 현상 (Super Conductivity)이다.
◇고온 부전도체의 출현=초전도현상이 발견된 후 70여 년이란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은 86년4월 이였다.
스위스IBM연구소의 「베드노르츠」 와 「묄러」가 영하2백43도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물질을 찾았다고 학술계에 발표했다. 이 정도 온도에서의 초전도현상은 2000년에 가서야 개발될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그 해 11월 미휴스턴대의 「폴·추」 박사와 일본 도쿄대학의 「다나카」 교수가 초전도 현상을 재확인하자 연구에 불이 댕겨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금년 2월 「추」 박사가 영하1백75도에서 초전도현상을 갖는 물질을 개발해내자 세계 학계는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한국과학기술원 윤덕룡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초전도연구에서 영하1백75도라면 상당한 고온이다. 그 정도라면 실용화가 보장된다. 왜냐하면 값비싼 섭씨 영하2백71도의 액체 헬륨을 쓰지 않고 값싼 영하1백96도의 액체 질소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성분이 세라믹으로, 합성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때부터 세계의 물리·화학·재료·금속 등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달려들어 새로운 초전도 물질을 찾아내는 게임이 시작됐다.
5,6월에 들어서 미·일·인도·소련에서는 영하를 뛰어넘어 상온에서까지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개발을 발표, 열풍은 기업체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더우기 미·일은 이번만큼은 질 수 없다는 경쟁심으로 연구는 물론, 특허사용까지 벌이고 있다.
심지어 지난 7윌28일 미 「레이건」 대통령은 외국인의 참가를 일절 배제한 「초전도 백악관 세미나」를 개최했다. 2천 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레이건」대통령은 『미국은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며 막대한 연구비 지원을 약속했다.
일본은 중소기업까지 초전도체의 개발과 실용화에 뛰어들고 있으며 과학완구로도 제작, 시판중이다.
우리나라도 올 봄부터 본격적 연구에 들어갔다.
주요연구기관은 서울대·부산대·과학기술원·표준연구소·연세대·포항공대·단자포신연구소 등이다.
이미 3월에 서울대 물리학과 김정구교수 (40)팀이 영하1백78도에서 초전도체를 개발, 포문을 열었다.
◇초전도체가 여는 미래=초전도는 기초과학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성공 만하면 그대로 실용화되는 기초분야다.
고온 초전도체가 영하1백90도를 넘었을 때 사람들이 흥분한 것은 그렇게 고대하던 실용화의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봤기 때문이다.
맥주 값보다 싼 액체 질소로도 초전도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게된 것이다. 그전에는 액체질소보다 1천 여 배나 비싼 액체 헬륨을 써야만했다.
현재 과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초전도 박막과 도선의 제조다.
이렇게 만들어야만 반도체·자기부상열차·전기송전·발전 등에 대량 활용될 수 있다.
먼저 얇은 초전도 막을 이용한 반도체 소자를 보자. 「조셉슨소자」라고 불리는 이 반도체는 전압의 차가 없어도 전류가 흐른다..
조셉슨소자의 온 (on)과 오프(off)가 바뀌는 시간은 1천억 분의 1초로 기존 반도체보다 1천 배 이상 빠르다. 더우기 저항이 없어 열도 나지 않아 컴퓨터에서 골칫거리인 냉각장치도 사라진다. 따라서 지금의 슈퍼컴퓨터가 TV만하게 축소될 수 있다.
김교수는 『반도체는 가장 빨리 고온 초전도체가 응용될 분야로 2∼3년 내에 실용화될 전망이다』고 밝혔다.
이미 미IBM사등 대기업과 대학에서 속속 초전도 반도체 시제품이 나오고 있어 일부에서는 반도체 공장의 집결지인 제2의 실리콘 밸리가 형성될지 모른다고 예고하고 있다.
초전도체는 또 에너지문제를 해결해 준다.
태양이 빛을 내는 원리를 지구상에서 재현해 보려는 핵융합발전은 초전도 기술로 개발이 앞당겨진다.
초전도를 이용한 강력한 전자석은 고온에서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만든다. 더우기 저항이 없는 초전도 도선은 수백만 암페어의 전류가 흘러도 이상이 없다.
송단기술도 혁신된다. 구리송전선은 5∼15%의 전기를 소비해버린다. 초전도 송전선은 에너지손실이 거의 없어 대도시의 송전도 1∼2개의 전선만으로 가능해진다.
초전도 코일에 한밤중에 남아도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시 꺼내 쓰는 시스템도 가능하다. 저항이 없는 코일 속에 전기를 넣어주면 장기간 그 상태가 유지된다.
레일에서 10cm가량 떠서 달리는 자기 부상열차도 빼놓을 수 없다. 시속 4백∼5백km로 gms들림 없이 달리는 부상열차는 초전도 자석을 추진력으로 쓴다. 만일 상온에서 초전도가 일어나는 물질이 나타나면 부상열차뿐 아니라 시속 3백70km로 달리는 초전도 선박 등 수송기관을 변모시키게 된다.
보통 크기의 모터보다 크기가3분의1이하인 초전도모터는 전력소비도 적어 전기자동차를 등장시킨다.
우주무기개발에도 초전도체는 들어간다. 강력한 레이저발생장치는 초전도체로 만들어지며 고성능의 레이다는 현재의 레이다를 고물로 만든다.
인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의료형 컴퓨터 단층장치도 값싸게 제작되며 선명한 화상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다.
당장은 이 정도지만 앞으로 연구하는데 따라 초전도는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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