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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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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8강전 1국> ●·탕웨이싱 9단 ○·이세돌 9단

3보(25~41)=우변 25. 탕웨이싱의 뇌리에는, 적당히 활용하고 버리는 사석 작전 따위는 없었다. 느슨하게 흐르다가 나른한 상황이 조성될 때 급작스럽게 속도를 바꿔 들이치는 기습을 좋아하는 성향 그대로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도 점잖게 받아줄 수 없는 장면. 반발의 기질을 타고난 이세돌이 아니라도 이런 곳에서는 거친 몸싸움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시나 26으로 먼저 부딪쳐 응수를 묻는다. 물론, 순응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백지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 정상의 프로들이다. 상대의 수읽기는 내 머릿 속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7은 준비된 선수. ‘참고도’처럼 진행되기만 해도 흑이 좋다는 게 검토진의 견해인데, 그렇다면 이세돌은 절대 이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과연, 30으로 한 발 늦춰 그물을 넓힌다. 어떤 결과에 이르든 과정은 험난하겠다. 그런 모험의 로망이 이세돌 바둑의 매력이기도 하다.

31로 건너 붙여 피할 수 없는 난전. 돌이킬 수 없는 풍랑의 뱃길이다. 문득,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눈앞의 현실은 폭풍의 바다인데 백이 좇는 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에 더 가깝다. 이루기 어렵다 해도 이상이란 그런 것.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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