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넘기는 검찰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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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 간부의 인사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이번 주 중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던 인사는 설 연후 이후로 연기됐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27일 "설 하루 전에 인사하면 (승진이) 안 되는 사람 입장에선 가혹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이날 "인사대상이 많아 청와대 검증작업에 시간이 걸린다"며 "다음 주 중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인사가 늦어지는 진짜 이유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정 총장 사이에 인사안을 놓고 심각한 의견대립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의 한 간부는 "서울중앙지검장 등 핵심 보직과 검사장 승진 대상을 놓고 큰 이견이 있다"고 전했다.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의 거취 문제에서 특히 맞서고 있다고 한다. 천 장관은 대상그룹의 비자금 조성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이 지검장을 지방 고검장으로 보낼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 지검장은 인천지검이 2004년 1월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를 결정할 때 인천지검장이었다.

그러나 정 총장은 이 지검장에게 대상 사건과 관련해 명백한 문책 사유가 없는 마당에 인사상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많은 검찰 간부는 "외부 인사들이 참여한 법무부 감찰위원회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난 사안을 가지고 인사조치를 고집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불법 도청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황교안 2차장의 검사장 승진 탈락설도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해온 검찰 공안부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황 차장은 국가의 불법행위를 파헤치는 데 앞장섰다"며 "사건 처리에서 천 장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반발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사시 합격자 300명 시대를 열었던 사시 23회들이 대거 검사장으로 승진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 등의 인맥과 연줄을 동원한 막후 로비전이 치열하다. 청와대와 가까운 권력 실세가 동향 출신의 검사를 검사장에 승진시키려고 적극 밀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검찰의 한 중간 간부는 "인사가 늦춰지면서 잡음이 무성하다. 인사청탁을 근절하기 위해 국민 추천까지 받아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던 천 장관의 공언이 무색해지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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