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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자급률 86% '에너지 독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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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슨 소리냐? 세계 석유업계 4위는 토탈이다."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에서 "엑손모빌 등 4대 메이저사…"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이 회사 홍보담당 메리 드와이어는 이렇게 되받았다. 그는 "토탈이 가스 생산량이나 순이익, 연구개발(R&D) 투자 등에서 세계 4위였던 셰브론텍사코를 이미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토탈사 직원들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만난 한 시민은 "프랑스는 에너지 독립국가며, 이는 토탈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실시했던 한 조사에서도 '프랑스 경제에 가장 크게 이바지하는 기업'으로 토탈이 1위에 뽑혔다. 기름이 거의 나지 않는 프랑스지만 석유자급률이 86%며, 가스는 자국에서 사용하고 남는 물량을 해외에 수출할 정도(가스자주율 111%)다. 토탈은 프랑스가 에너지 독립을 이룩한 데 대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세계 석유시장은 오랫동안 엑손모빌-BP-로열더치셸-셰브론텍사코로 이어지는 미국.영국계의 4대 메이저가 주름잡았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토탈, 스페인 렙솔, 이탈리아 ENI 등 유럽 기업들이 강력한 도전자로 떠올랐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군소업체였지만, 90년대 후반 각국 정부가 이들을 앞세워 에너지 확보전에 뛰어들면서 순식간에 거물로 성장했다. 급성장의 배후에는 국가가 있었다. 정부가 앞장서 인수합병(M&A)을 통해 국영 에너지 기업의 몸집을 불리는가 하면 국가원수와 정부 고위급 관료가 수시로 산유국을 찾아다니며 에너지 외교에 힘을 쏟았다. 적극적 외교를 통해 옛 식민지였던 남미.아프리카 국가에서 광구를 확보했고, 탐사 단계부터 풍부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키웠다.

토탈은 프랑스 정부의 지원 아래 99년 벨기에 석유업체 페트로피나를 합병했다. 이듬해엔 자신보다 몸집이 큰 엘프까지 합쳤다. 프랑스 정부는 또 성공불 융자(성공하면 갚고 실패하면 갚지 않아도 되는 방식)를 도입해 토탈이 알제리.봉고 등 과거 식민지 국가의 유전지대를 샅샅이 조사하도록 돈을 댔다.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도 렙솔을 앞세워 에너지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99년 외채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정부가 내놓은 에너지 기업 YPF를 사들이며 하루 원유 생산량이 25만 배럴에서 세 배 이상 뛰었다. 렙솔은 스페인이 하루 소비하는 원유의 3분의 1가량을 생산한다. 렙솔의 로버트 던컨 국제담당 이사는 "유전영토 확장전략은 이제 시작"이라며 "2003년 카자흐스탄 진출을 추진할 때 국왕이 직접 현지를 방문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스페인 정부는 유전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석유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ENI도 이탈리아 정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2003년 이탈리아 정부는 노조의 반대 파업에도 불구하고 국영 가스.석유업체인 AGIP.ANIC.SNAM 등을 합병시키고 외국 업체들도 잇따라 인수하는 방법으로 ENI의 몸집을 확 불렸다. 이탈리아 정부는 ENI를 민영화하면서도 지분 30%를 유지, 언제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끈을 놓지 않았다.

또 막대한 규모의 물리탐사에는 비용의 40%를 정부가 대고 있다. 이런 전폭적인 지원은 ENI의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ENI는 2000년 카스피해에 있는 카샤간 해상 광구의 운영권을 따냈다. 이 광구는 매장량 90억 배럴 규모의 초대형 유전이다. 지난해 10월 리비아에서 열렸던 44개 유전 광구 입찰에서도 ENI는 가장 많은 8개 광구를 차지했다. 이탈리아 에너지부 장관이 과거 식민지였던 리비아에 수시로 방문하며 물밑외교를 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반면 유럽의 강국 독일은 에너지 부문에선 약소국이다. 독일의 윈터셸 등 몇몇 중소 석유업체들이 해외 유전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다른 유럽 국가의 기업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독일의 석유.가스 자급률은 11%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원우 박사는 "에너지 자원과 같은 전략물자 확보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야 효율적이라는 것이 유럽의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양선희 차장(경제부문), 미국=권혁주.서경호 기자

중국=최준호 기자, 유럽.카자흐스탄=윤창희 기자(이상 경제부문)

호주=최지영 기자(국제부문)

*** 바로잡습니다

1월 27일자 6면에 실린 세계는 자원 전쟁 중 ③회 '메이저 에너지 업체 토탈 키운 프랑스 석유자급률 86% 에너지 독립'기사에서 언급된 이원우 박사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아니라 에너지경제연구원 소속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이 박사에게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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