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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말이 안 통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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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인터넷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대화의 기술’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이 제목을 단 국내외 저자의 책이 243건 검색된다. ‘소통의 고수로 거듭나는 대화의 심리학’이라든지 ‘남을 감동시키는 대화의 기술’ ‘성공대화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들로, 제목 그대로 남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들이다. 대화법 관련 책이 이렇게 많다는 건 대화를 제대로 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양분한 촛불과 태극기집회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로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굳이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한 집에 사는 부모·자식 간조차 서로 “말이 안 통한다”며 입을 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치적 신념이나 세대차에 따른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라도 그 어느 때보다 대화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우리는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 서로 손가락질만 하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다.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게 대화인데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말 안 통하는 사람이 득실득실한 세상에 살게 된 걸까. 미국의 라디오 프로그램 호스트인 셀레스트 헤들리가 2015년에 한 Ted 강연을 뒤늦게 보면서 나름 답을 찾았다.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10가지 비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그는 경험을 토대로 ‘한 번에 여러 일을 하지 말라’거나 ‘대화 흐름을 따라가라’ 등 10가지 대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10개로 나누기는 했지만 사실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 하나였다. 바로 경청이다. 그는 “대화란 말하기와 듣기의 균형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균형을 잃어버렸다”며 “대화를 할 때 진짜 집중해서 상대의 말을 들으면 굳이 ‘눈을 보고 말하라’는 식의 방법을 위한 방법론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헤들리는 ‘당신이 만난 모든 사람은 당신이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자세로 때론 내 의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도 했다. 평소 견해가 달라도 상대의 말에 배울 게 있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누구와 대화하더라도 말이 통한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나부터도 생각이 다른 누군가와 대화할 때 무심코 ‘상대방은 내가 아는 걸 모른다’는 전제로 얘기를 했다. 그 결과, 양측이 서로의 주장만 늘어놓다가 입을 닫아버렸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이든 아니면 부모·자식이든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말이 안 통한다고 느꼈다면 그 이유는 상대방에게 있었던 게 아니다.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려는 나에게 있었던 거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