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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기자의맛따라기] 암탉과 뽕나무의 만남 상·계·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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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에는 그 길이 생각난다. 경기도 남양주 진접에서 의정부 축석령 사이 광릉 수목원 길. 광릉은 세조와 왕비 윤씨의 능이다. 능이 들어선 후 주변 숲 수백만 평이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지금도 일대 340만여 평은 국립수목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500년 넘게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껏 자란 나무들은 원시림을 이뤄 사철 사람들을 유혹한다. 낙엽수 거목들은 분재 같은 수형을 자랑하며 알몸으로 어우러졌다. 밑동이 한 아름도 넘는 전나무.잣나무.소나무들은 푸르름으로 눈이 얼마나 하얀지 일깨워 준다. 쌓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우두둑 꺾이기도 하는 그 숲길을 걷다 보면 그림 한 폭이 떠오른다.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다.

세한도는 제주에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4년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렸다. 권력을 잃었는데도 변함없이 뒷바라지를 하는 제자의 인품을 소나무.잣나무에 비유해 칭송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곧게 자라는 어린 나무와 비바람에 시달린 듯한 고목을 토담집 좌우에 나눠 배치해 고마운 제자와 신세가 고단해진 자신을 표출했다. 발문에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논어 구절을 인용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뜻이다. 이상적이 그와 같다는 표현이다. 한 오라기의 꾸밈도 허용하지 않은 강건한 필치로 고고한 문기(文氣)를 뿜어내는 그림은 추사의 대표작이자 한국 문인화의 절정으로 꼽힌다.

세한도가 생각나는 그 길 중간에 봉선사가 있다. 광릉의 원찰이면서 조선시대 교종의 총본산이었다. 절 아래 마을은 예전엔 음식점 두어 곳과 담배 가게, 하루 4~5번 왕복하는 완행버스 정류장뿐이던 한적한 산골 농촌이었다. 20여 년 전부터 하나 둘 음식점이 들어서더니 요즘은 '광릉 산채마을'을 이뤘다.

마을 복판의 '큰대문집'은 그 가운데 내력이 꽤 깊은 집이다. 원래 산채집이었지만 근래 뽕나무 동충하초 상계탕(桑鷄湯)이라는 메뉴로 차별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물은 뽕나무 뿌리와 여러 가지 한약재를 4시간 달여 만든다. 닭은 450g짜리 암탉만 쓴다. 생육기간이 길어 일반 삼계탕과 육질이 다르다. 뽕육수에 1시간 삶아 건져 놓는다.

주문이 있으면 큼직한 뚝배기에 삶은 닭과 불린 찹쌀을 넣고 죽처럼 퍼지도록 끓여 낸다. 동충하초 버섯과 잘게 다진 표고.대추.밤이 함께 들어간다. 쌀은 주인 김한섭(42)씨의 처가에서 재배한 철원 민통선 오대 찹쌀이다. 조리하면서 적당히 간을 한다. 고기 속까지 간이 배도록 하기 위해서다. 먹을 때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간간하다. 살코기는 쫄깃하고 갈피마다 육즙이 우러난다. 국물은 구수하고 부드러우며 약재들의 향이 감돈다. 산채정식으로 20년 관록을 쌓은 집이라 밑반찬들도 골고루 정성이 배어 있다.

추워져야 송백의 푸르름이 제대로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절감한다. 건강할 때 운동도 하고 섭생도 해야 적은 노력으로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수목원에 갈 때나 근처 스키장.골프장 오가는 길에 상계탕 한 그릇 곁들이면 보약 못잖은 보양식이 될 것 같다.

세한도는 개인 소장이라 평소 좀처럼 보기 어렵다. 마침 중앙박물관(www.museum.go.kr)이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특별전을 하고 있다. 1월 8일까지 전시할 예정이었는데 관람객이 몰려 30일까지 연장했다. 흔치 않은 기회다. 광릉수목원(www.koreaplants.go.kr:9300) 입장은 닷새 전에 예약해야 한다.

이택희 기자

*** 큰대문집

■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8- 49, 47번 국도 퇴계원 → 장현 → 부평교 삼 거리에서 광릉수목원 방향 1.5㎞ 봉선 사 주차장 앞

■ 전화: 031-527-7235, 011-351-9878

■ 메뉴:

뽕나무 동충하초 상계탕, 산채 솥밥 정식(각 1만원),영양돌솥밥(7000원), 버섯전골(2만~3만원), 토종닭.오리. 꿩.토끼 요리(3만5000~4만원)

■ 휴일: 큰 명절만 쉼.

■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 좌석수: 60석

■ 주차: 가능

■ 카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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